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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국제사진가 기획전
구와바라시세이 사진展_내가 본 격동의 한국
2009년 6월 5일 – 2009년 8월 9일


ⓒ Kuwabara Shisei,2009


한국 현대사의 입회자 - 구와바라 시세이

해방 후 1970년대까지의 한국의 현대사는 마치 거대한 화산에서 분출된 뜨거운 용암이 채 식기도 전에 또 다른 용암이 쏟아져 나와 그 위를 덮치는 것과 같은 과격한 변화와 피를 말리는 긴장으로 연속된 시대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격동과 고난의 역사의 의미는 퇴색되고, 그토록 절박하게 외쳤던 슬로건들은 이미 사어로 변해버렸다. 온 몸으로 헤쳐 나온 그 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 인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 구와바라의 사진들은 백 마디의
언어보다도 생생하게 그 시대를 증언해준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김포공항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65년, 아직 두 나라의 왕래가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무 매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스물일곱의 보도사진가가 군사정권의 엄격한 보도 통제가 깔린 한국을 취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모한 일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청계천과 완월동 산등성이에 빼곡히 늘어선 판자집들, 한일회담 반대시위대와 진압군, 월남으로
아들을 떠나 보내는 어머니와 전사자들의 무언의 귀환, 농어촌 사람들의 고달픈 삶, 한미 군사합동훈련, 기지촌 주변,
평양시민과 북송 교포, 판문점, 베트남의 한국군, 도시개발과 도시민의 일상 ……. 1960년대와 70년대의 흑백사진들은
하나 같이 어둡고 무거운 중 저음의 톤이 깔려 있다. 그가 카메라를 겨누는 것은 대개는 한국의 관헌들이 가리고 싶어 하는
현실이었다. 필름을 빼앗기거나, 블랙 리스트에 올라 강제출국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촬영현장에서 항상 퇴로를
먼저 확보해놓고 카메라를 겨눈다. 자신의 견해를 개입시킬만한 여유 같은 것이 없는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그래서 그의 사진은 진실하다. 그는 남루한 현실을 담담하면서 정감 있는 영상 시로 승화시킨다. 장터에서 산 돼지새끼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낙네나 밭에서 새참을 먹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렇다. 거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노동자의 고뇌에 찬
표정에서조차 우리는 분노 대신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청계천 시궁창에서 놀던 아이들, 검정 고무신과 헤어진 옷을 입고 해맑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던 사진 속의 아이들은 지금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모두 우리의 역사다.

한 사람의 일본인 청년사진가는 줄기찬 의지와 열정만으로 한국현대사의 현장에 뛰어들었고, 자신이 입회한 순간들을
움직이지 않는 시각적 증언으로 남겼다.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력이었다. 우리에게도 1960년대와 70년대를 살았던 많은
사진가들이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구와바라로 인해서 소중한 기록을 후세에 남겨줄 수
있게 되었다. 보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지 않는 사진은 사진으로서의 생명력이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역사적인 사실이 풍화되었을 때일지라도, 보는 사람에게 과거를 생각하게 만들고 감동을 주는 것이 기록으로서의 사진이 가진 힘이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은 바로 그런 힘을 갖고 있다.


김승곤 (순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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