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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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기획초대전
이상일 사진展
2009년 8월 14일 – 2009년 10월 31일


ⓒ Lee sangil


RESET

이상일이 범어사에 눌러 살며 새벽마다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듣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구리부처와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생각이 깃들 자리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거기서 그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빛이 모두 사라져버린
새벽에, 빛 없이는 무용지물일 카메라를 들고 그는 대체 무엇을 한다는 걸까. 자동차로 가득한 길을 달리다가도 멀리
금정산이 보이는 곳을 지나칠 때면 고개를 돌려 그 언저리를 올려다보곤 했다. 저기 이상일이 있다.
사진을 모르는 내게 어느 날 그가 새로운 작업의 포트폴리오를 꺼내놓았다. 새벽마다 셔터를 눌러 찍어낸 사진들은
적막 속에서 생각에 빠진 듯한 사물을 담고 있었다. 만물이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새벽 세시. 그러나 여전히 완고한 어둠
속에서 그가 찾아낸 건, 검은 바위와 어지러운 나뭇가지, 빨래집개와 플라스틱 의자, 신발장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운동화들이었다. 어떤 것은 대강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그 모습을 드러내었으나, 많은 것들이 무언지 아직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에 어딘지 모를 곳에서 정지하여 있는,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없는 그림자들. 국수를 먹는 동안 우리는 내내 다른 말만 주고받았다. 커피를 앞에 놓고 앉았을 때야 그는 사진 이야기를
잠시 꺼내었다. 그 가운데 몇 자락이 헤어진 후에도 남아 머릿속을 맴돈다.

사람이 산다는 게 무엇인가. 그에 대해 속으로 미리 규정하지 않고 현장에서 부딪히는 대로 카메라에 담으려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에는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숨어있었으리라. 이제 그것마저 털고 사물과 그냥 일대일로
대면하려 한다.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주제로 소화하려 했던 그간의 시도에서 걸음을 돌려 새 길을 가려 한다.
알고 있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것, 이제 그것들을 다 털어버린다. 그 첫 발자국이 이 사진들이다.

그렇게 보였다. 이상일이 누구인가. 망월동 묘지의 녹슨 영정들과 공단이 들어서며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어촌사람들,
이 땅에서 가장 슬픈 그런 존재들의 주위를 십년이 넘도록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던 그가 아닌가. 슬픔을 넘어 사무침에
이른 그의 시선은, 범상치 않은 개인사로부터 출발하여 간단치 않은 우리 사회의 현대사를 선명하게 관통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 이상일은 집을 나서 멀찌감치 가던 걸음을 단숨에 되짚어 와서는 문을 열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서버린
듯하다. ‘오온(五蘊)’이란 난해한 열쇠를 우리에게 남긴 채. 요컨대 그는 과거와 전혀 다른 사진을 하필 만물이 새로
깨어난다는 시각에 맞춰 찍음으로써 단호하게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놓고 간 포트폴리오들을 창틀과 책꽂이에 한 장 한 장 올려놓아 보았다. 어느새 사위가 까만 그림자들로 둘러싸였다.
형광등 불빛은 환하였지만 어둡고 모호한 기운이 방 전체를 감싸며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전시장 벽면에 걸릴 크기로
확대된 사진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확 돋는다. 몸은 이처럼 대번 그의 사진에 반응한다.
범상치 않은 이상일의 사진은 이미 내안에 무언가를 심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는 대체 무얼
보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자신도 아직은 잘 모를 수 있다.
세상을 드러내어 비추는 객관의 빛을 그가 굳이 거절한 것은 모든 것이 다시 깨어난다는 새벽 세시의 의미 때문이라고
하자. 그 어둠을 엷은 플래시로 슬쩍 밀어놓고 잡아낸 것들은, 그 주관의 빛에 하필 드러난 대나무와 물바가지는 그냥
우연의 산물일까. 아니면 그것도 결국 이상일 내면의 의식이 선택한 결과인 것일까. 또는 이 모든 것을 불가에서 일컫는
인연이란 말로 눙쳐버려야 할까.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았거나 혹은 극도로 함축된 새로운 사진들의 안쪽을
문외한으로서는 제대로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그가 오래 전에 찍은, 온산공단 해변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의 사진은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늘 마음에 아프게
꽂혀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담아내려 한 것은 그 온산면 당월리의 빗물에 갇힌 촌집 마당이거나, 먼 길을 떠나며 점차
숨결을 거두어 가시는 ‘으므니’거나, 망월동의 영정 속에서 면사포를 쓰고 웃는 새 신부와 같은 대상들 자체였을까. 평생
꽃이라고는 찍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이상일의 사진이란, 하나의 사무침을 거쳐 또 다른 사무침에 다다른 흔적들이 아니
었을까. 이제 그가 그 오래된 사무침을 접고 오온의 내면으로 들어서있다.
컴퓨터의 리셋은 놀라운 장치이다. 종일 지루하게 몰두하던 작업에서 문득 벗어나고 싶을 때 리셋 버튼을 눌러본다.
화면을 겹겹이 덮고 있던 생각과 관계들이 순식간에 까만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팡파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이란 글이
떠오른다. 가끔은 그렇게 삶을 완전히 새로 시작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우리 발걸음의 궤적을
돌아보면 그것은 결국 중심을 공유하는 크고 작은 동심원들로 남아있으리라. 공장 굴뚝 옆 황량한 어촌마을과 잔설이
녹는 망월동을 지나 이제 이상일은 새벽 범어사 길을 가고 있다. 그의 동심원들 한가운데에서 형형하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권 융 (경성대학교 교수, 고은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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