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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Cry Crack Crazy – 박영숙 사진展
2009년 11월 7일 – 2010년 1월 10일


ⓒ 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에 대하여

우리 어머니들은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다. 현모양처라는 너울을 씌워놓고 여성들의 ‘자아의식’을 박탈했던 봉건사회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버리고, 어머니 또는 대가 집 안주인 역할로만 살기를 요구해왔다. 제도문화가 그러했으니 여성자존이 묵살 당했던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자기라고 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그래서 이따금 가슴이 터지고 찢어지는 경험이 여성들을 미치게 하곤 했다. 여성들은 바로 자신을 미치게 하는 고통이 무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른 채,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의 고통들을 겪어내며 참고 또 참았던 것이다. 가문, 남편, 그리고 자식(아들)을 위하는 일만이 그녀들의 본분이라 믿어왔던 것이다. 여성에게는 ‘자기 또는 자아’를 지켜낼 그 어떤 조건도 주어지지 않았고 모든 지적 교육도 박탈당했었다. 단지 여성을 생물학적 암컷으로만 인식,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만이 여성의 본성으로 생각하도록 길들여졌다. 남편 따라 죽으면 가문에 영광이 되어 ‘열녀비’를 세워 칭송해 왔듯, 당대 명문규방 지침서는 오직 남성 중심적 규범과 덕목만을 요구했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구조에 도구화돼 있었던 것이다.

전통, 문화, 제도가 그러했으니 어찌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자아인식이 있어 거부하려 해도 철저하게 묵살 당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자아를 지키려 발버둥쳤던 여인들의 몸짓은 바로 동내어귀를 서성이던 ‘미친년’의 몸짓이 되고, 한(限)의 소리를 품어대던 ‘여귀(女鬼)’의 몸짓으로 남았던 것이다. 그 많은 꽃말과 민담들이 그 미친 여인들의 몸짓을 담아오고 있다. 슬픈 사연과 억울한 처사에 이야기로나마 한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쳤다고밖에 어떤 긍정적 수식어로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어쩌면 역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왔지 않았나 싶다. 오늘에 와서야, 겨우 우리시대 페미니스트들은 신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 서서히 발광을 시작하고 있다.

옛 여인들은 그렇게 한(限)을 품고 살아왔다. 그 여인들의 한. 그것을 남성들은 한의 문화라 일컬으며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옛 여성의 상처trauma요, 고통을, 강요당한 인내와 절규를, 그래서 미친년이 되고, 처녀귀신이 될 수밖에 없게 했던 것을, 아름답다 했으니 미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모든 옛 여인들에게 입혀진 못 마땅한 개념들을 전복시키고 싶다. 이 “미친년프로젝트/Mad Women Project” 작업은 그렇게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그녀들이 ‘미쳐가면서까지 몸으로 말하려 했던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바로 그 ‘몸짓 대신 해보기’ 와 '대신 미쳐보기'를 통해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자들은 알아듣지 못한 몸짓, 남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몸의 이야기를, 소통시켜내기 위해서이다. 억압만 해왔던, 아니 못 본체 덮어버렸었던 이야기들을 재현해 내고 싶어서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40대에 들어서서였다. “또 하나의 문화” 아카데미에서 중세서양의 “마녀화형”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부터였다. 나는 묻혀있던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것이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미친년프로젝트/Mad Women Project”는 이러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억압당하며 살다간 옛 여인들을, 그리고 여전히 미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여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그녀들의 몸짓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몸 언어의 시각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몸으로 말하기, 몸으로 소통하기, 몸으로 치유하기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으로 말미암아, 시대를 거쳐오며 여성에게 가해졌던 그 어떤 관념들이 깨지고 있다. “미친년프로젝트/Mad Women Project”는 작가인 나도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스스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숙(사진가)
“기억을 향한 기록들의 몽타주; 박영숙과 카메라, 그리고 사진 속/밖의 여성들”에서 발췌
박영숙의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연출적 위치에 서 있다. 박영숙의 카메라 작동에서 중요한 것은 거리두기를 통한 관조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영적 분위기(Aura), 또는 자본주의적 편의주의나 과학주의를 위해 마련되는 구경거리나 증거가 아니다.
… (중략)

‘종교의 쇠퇴는 사진의 발흥과 일치 한다’라는 존 버거의 질문이나, ‘사진의 예술성 요구는 사진이 상품으로 등장한 것과 동시적으로 나타난다’라는 벤야민의 말을 다시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정치, 학문, 인상학적 연관관계에서 벗어나 대상을 순수하게 시각적 관점에서 보는 소위 창조적 사진에 대한 벤야민의 비판, 즉 시각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미적 특성을 강조하려 했던 ‘예술작가들’을 지나, 시각적 영감은 사회적 경험에 따르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는 풍자 화가들의 곁에 가 선다. 같은 맥락에서 박영숙의 카메라는 ‘즉각적 향유’라고 일컬을 수 있는 어떤 예술적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서라거나 혹은 모더니즘의 그 숱한 선언문적 예술운동들이 그러했듯이 예술의 철학적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대상을 포착하지 않는다. 그녀는 표현매체로서 카메라를 믿는다.
도대체 카메라를 통해 무엇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일까? 빛을 발하고 있는 여성들의 미친 내면이, 바다이며 대지이며 숫자이며 활자인 이미지인 검게 붉게 푸르게 타오르는 피며 살인 내면의 풍경이, 어떤 정지가 어떤 숨 막히는 차오름이 여성이 동지이며 연인이며 자매이며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손녀인 여성들의 나라가, 사진의 기록적 가치가 중요시했지만 그러나 사진을 통한 표현의 가능성을 더 확장시키기 원했던 그녀는 직관과 연출의 힘을 교묘히 활용해 이렇듯 여성의 내면세계를 표면 위로 끌어올려 일상적 삶과 교직을 이루게 한다.
관람자의 눈에 바싹 들이대어진 ‘홀린/미친/들린’ 여성들. 이 이미지들에 충동된(drived) 관람자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말을 시작해야 된다. 겉의 말이든 속의 말이든 소리를 내야 한다. 관람자가 여성일 경우, 그것은 자기 안에서 빛을 발(發光)하고 있는 또 다른 ‘자기들’을 만나는 홀림/미침(發狂)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
김영옥(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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