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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노순택 사진展 _성실한 실성Lunatic Fidelity
2010년 1월 16일 – 2010년 3월 28일


ⓒ NOH Suntag 조류도감 Appropriating Reality, Archival Pigment Print, 135x100cm, 2004-2009


성실한 실성  Lunatic Fidelity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묻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는 너에게 말하련다.”*
 
1839년이라고 못 박지는 말자. 
사진이 어느 해, 누군가의 고독한 실험실에서 깜짝 발명된 것은 아니니까. 
‘차면 넘치는’ 순리에 따라 사진은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어느 사진사가의 말마따나 “그 발명은 자기 차례를 맞아, 스스로 새로운 추진력이 되어 뛰어든 어떤 운동의 단계로서만 이해될 수 있는, 때맞추어진 사건”이었다. 
인간은 “사회진화의 매 시기마다 발전의 수준과 그를 구성하는 사회관계에 맞추어 자신을 재현할 수 있는 일정한 이미지를 소유”해 왔는데, 산업자본주의가 꿈틀대던 시기가 바로 사진의 차례였다. 이를테면 사진은, ‘호출’된 셈이다.
사진은 성실했다. 인간이 다뤄왔던 그 어떤 재현의 도구보다 성실했다. 과학적으로 성실했고, 편견 없이 성실했으며,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엇보다 새롭게 재편된 권력의 이해와 빠르게 진행된 산업화의 요구, 날로 확장되는 시장의 욕망을 반영할 줄 알았다. 
사진의 기계적 성실함과 낮은 몸값은 ‘손의 불안한 성실함’과 비싼 몸값을 비웃으며 귀족의 이미지 독점체제를 와해했다.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는 비명이 나올 법했다.
사진은 시장친화적이었기에 확장과 갱신, 탈태의 여정에서 기민함을 보였다. 과학적 측면에서, 사회적, 미학적 측면에서 오늘의 사진은 어제의 사진이 아니다. 


2008년이라고 못 박지는 말자. 
그들이 어느 해, 누군가의 역사적 결단만으로 깜짝 등장한 것은 아니니까. 왜곡된 근대와 더불어 그들은 선진화와 사회정의, 헌정질서 확립의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한국사회는 “근현대사의 매 시기마다 그 발전수준에, 또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관계들에 맞추어 시민을 통치하려드는 일정한 권력을 보유”해 왔으며, ‘예외상태’의 관철과 기억의 억압은 그들의 핵심기술이었다. 
그들은 성실했다. 국가에 성실했고, 자본에 성실했으며, 심지어 신앙에 성실했다. 저돌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누구보다 시장친화적이었다. 
그들은 ‘묵살과 강행의 성실함’으로 ‘토론과 표현의 불편함’을 비웃으며 확장과 갱신, 탈태의 여정에서 기민함을 보였다. 허나 토목적 측면에서, 정치적, 미학적 측면에서 오늘의 그들은 어제의 그들과 구분을 불허한다.

사진의 성실함은 배가되었다. 사진기를 다루는 우리의 손놀림도 더욱 성실해졌다.
정치의 친절함은 배가되었다. 정치를 대하는 우리의 머릿속도 더욱 복잡해졌다.
아무나 사진을 갖는 시대를 거쳐, 아무나 사진기를 갖는 시대가 도래했다.  
입 닥치고 숨죽이는 시대를 거쳐, 아무나 정치를 떠들어대는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바라본다. 재현의 욕구를 느낀다, 소유를 갈망한다, 셔터를 누른다, 아니 눌러댄다, 찍어댄다, 뽑아댄다, 들이민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다스린다. 통제의 욕구를 느낀다, 사랑을 갈망한다, 하여 억압한다. 삽질한다, 부순다, 퍼낸다, 담는다, 뚫는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사진의 성실함은, 혹은 사진사의 성실함은 문제의 파악과 접근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회와 역사의 재현에서 사진의 성실함은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의 가위질로 성립하는 사진의 재현법이 ‘세상의 지금’과 관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정치의 성실함은, 혹은 정치인의 신앙적 신실함은 문제의 파악과 접근에 어떤 도움이 될까? 사회와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정치의 배타적 성실함이 야기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혹시 사진은, 정치는, 우리는, 성실의 이름으로 실성을 은닉했던 건 아닐까?
 
 

“우리는 밀가루와 한 분의 임금님을 모셔왔습니다. 받으시지요!
밀가루를 받은 사람은 임금님도 받아야 합니다.
싫다고 장화를 핥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싫어도 계속 굶주려야겠지요.”*


*베르톨트 브레히트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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