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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사진적 사색 – 최광호 사진展
2010년 8월 14일 – 2010년 11월 4일


ⓒ 사진위를걷다 01, 2007, 젤라틴실버프린트, 200x100cm


불만의 풍경
 

1. 잔혹한 풍경의 초대장
장면은 오물로 훼손된 듯하다. 오줌같이 묽은 것이 아닌 걸쭉한 것, 술 취한 자의 토사물이거나 유산한 아낙의 하혈이거나, 날카롭고 피비린내 나는, 유리조각이나 예리한 도구에 찍힌 듯, 순식간에 쏟아낸 것들이 발자국과 함께 두서없이 찍혀있다. 사진은 사유나 사색을 불러오기 전에 오열한다. 검은 배경은 정체모를 오물자국으로 인해 붉은 담갈색의 불안감으로 서서히 전환하고 발자국의 주인공은 사그락 사그락, 우리의 뒤통수를 향해 잔혹극의 서막을 열고 있다. 한바탕 핏빛 어둠을 휩쓸고 간 광기의 숲속에서 살해한 시간의 주인공들은 중력을 잃고 부유한다. 아니 벽을 타고 오르거나 천정을 거꾸로 매달려 돌아다니다가 깊은 심연 속으로 화면을 종횡하고 있다. 그것은 정의되지 않은 물체이거나 배역이거나 시나리오이다. 그것은 규정되거나 규명되거나 범주화하거나 판결을 기다리거나 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우리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것은 최광호의 사진이미지 앞에 멈춰버린 우리의 예의바른, 혹은 교양적인 정체가 유린된, 아니 능욕의 배신감만이 명확하게 떠오르는 단상이다. 말하자면 최광호의 사진은 한마디로 불만의 풍경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잔혹극의 초대장과 같다. 이제부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핏대서린 셔터를 철컥대며 희대의 살인마가 벌이는 소름끼치는 쾌감을 기대하셔도 좋다.
 

2. 불만투성이의 명함 그리고 가족사진
이것은 두터운 사진집과 함께 그가 꺼낸 명함이다. 내가 받아본 명함 중에서 가장 성의가 없다고 해야 하나? 특이한 항목으로 분류하기도 난처한 모양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PD와 출연자의 입장이었다. 여의도에 있는 KBS TV 제14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질 <낭독의 발견>이란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지난 5월, 제작팀은 우리 사회가 명시적으로 몰아세우는 사회적 아젠다에 충실하고자 했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대중미디어의 공인된 목표이어야 했다. 주제를 ‘가족사진’으로 정했을 때만해도 지난 시절의 추억이 떠오를 법한 그럴듯한 이미지의 창작자들이 나설 것 같았다. 도식적이고 근대적 명제로부터 일정한 간극을 유지하고 새롭게 창궐하고 있는 사진문화, 엄밀히 말해 얼리 어답터들의 이미지 놀이기구에 명분을 불어넣어주는 타협점을 적절히 구사하는 주제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가족’이라는 이렇게 단순하고 직접적인 주제를 다루는  한국 작가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아뿔싸! 가족을 담는 사진가가 없다니, 가족은 스튜디오 상업사진의 대표적인 피사체로 인식될 뿐이다. 한국의 사진가들에겐 미학적 대상이거나 기록의 가치를 가진 대상이 아닌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아주 가깝고 아주 먼 대상이다. 그 ‘가족’은 사회적 배경으로서 경제적 기반으로서 정치적 풍경의 자해자로서 반쯤 넋이 나가 풀이 죽은 상태이었다. ‘한국 사회의 가족’을 논하기엔 지면이 모자란다. 최광호 작가는 알고 있다는 듯이 불쑥- 두툼한 자신의 <가족>사진집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는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어깨를 붙들고 우격다짐을 벌일 것 같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가족이 붕괴하고 외면당한 책임은 대중권력집단들의 소행이며 그중에 미디어의 졸렬한 의도에 있지 않겠는가하며 싸울 태세였다. 그렇다고 그를 시대에 뒤떨어진 민중투사나 불한당의 일면으로 몰 수 없다. 완행열차의 앞좌석에 앉은 순박한 시골아저씨처럼 수더분하다. 방금 일을 끝낸 노무자의 모습처럼 오후의 자외선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삭아버린 노끈처럼 자꾸 옆길로 샜다 제자리를 찾곤 했다. 녹화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본색을 참기 어려워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가족사진’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제는 서서히 궤도를 이탈하고 있었다. 섬뜩하게 목을 죄고 불신의 감정선을 몰아치며 피하면 피할수록 아주 가깝게 오른쪽 옆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뇌관처럼 그것은 폭발 직전의 상태로 내몰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죽어가고 있다. 죽음의 영겁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가고 있다. 할머니도 죽고 아버지도 죽었으며, 누이도, 동생도 서로를 옭아매는 공인된 무대 위에서 죽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처절한 오물과 발끝으로도 설 수 없는 수렁 속에서 살아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나의 ‘가족’이다. 우리는 서로를 죽인다. 내가 아닌 것을 죽이고, 나의 근원을 죽이고, 나의 과거를 죽이고, 나의 본질을 죽이고, 나의 미래를 죽이며 오로지 현재의 나만 발버둥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사는 것일까? 최광호의 사진은 이러한 ‘죽음’의 순간을 찾아 부조리하고 잔혹한 사회의 모가지를 잡아채고 있다. 그는 힘겨워하고 있다. 아니 힘이 붙인 싸움을 걸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잡아 챈 죽음의 순간을 우리에게 다시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과연 살아 있습니까?”
 
사진가는 시간의 살해자라고 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간의 영속성을 멈추게 하며 시공간의 지속적인 영위를 정치한 채 그들을 기억의 프레임으로 박제화 한다. 그는 아주 영락없는 연쇄살인마에 가깝다. 본성을 숨기고 결정적인 순간을 응시하고 있다. 이 불온한 공간, 불편한 시간 도살자의 명함을 딱! 내 앞에 들이민 그는 과연 누구인가?
 

3. 죄의식과 미의식
그는 사회 부적응자임이 틀림없다. 일찍부터 동료로부터 외면당하고 - 그의 사진은 반(反)사진적이라는 사진계와 동료들의 평가에 실망하고 유학의 길로 나섰다고 증언한다. - 사진의 대상으로부터 외면 받았으며 - 그의 발언에 따르면 주 피사체인 자신의 아내는 별 4개를 단 장군이다. 가끔 원수로 진급한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적은 그의 딸 ‘수가’, 그녀는 더 이상 아빠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사진가로서의 최광호는 인정한다고 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 말끝마다 딸의 평가를 인용한다. 서로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가족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가족에 관한 작업은 무언가 사회적인 분석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진가의 반사회성과 정체모를 불만의 온상이라고 해야 하나? 시간과 여건이 주어진다면 차후에 작가의 가족사진에 관한 연구를 좀 더 하고 싶은 심정이다.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최광호의 사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과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점이다. 당신은 기억하는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가 근대화와 도시화의 재물로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또한 의복의 경계조차 허물며 서로의 살갗과 핏줄로 연명하던 가족의 한 구성원과 나누었던 표정은 오후 2시의 태양과도 같이 화이트 아웃 된 영상처럼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니 의식적으로 쳐다보지 않아야 할 너무나도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처럼 의도적인 의식차단의 상태로 살고 있다. 바로 그것이 죄의식과 같은 의도적인 소거대상이 아닌가? 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세치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고 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다양한 비교심리학이 적용된 이기의 인터페이스로 이 세상은 오히려 터럭 한오라기도 남아있지 않은 할머니의 적나라한 벗은 몸처럼 분명하다. 최광호에게 사진작업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미의식은 이처럼 완벽한 죄의식과 같다. 특히 포토그램, 혹은 광호타입으로 인화지 위에 감광액을 바르고 알몸으로 드러누워, 눈앞의 한 치의 세계도 알 수 없는 살아남은 인간의 죄의식이 노광된 채 드러난 이 사진의 힘을 보라! 
당신은 과연 당신이 믿고 있는 만큼 힘이 센가?
 

4. 그리고 당신에게
근래에 최광호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론에 전착하고 있다고 한다. 렌즈나 기계적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가장 가까운 신체나 사물을 감광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사진의 방법론으로 뭐라고 부르든 최광호는 화면과 밀착하여 직접 보고 있는 자와 교감하고 싶어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자신의 벗은 몸으로 인화지 위에 드러누운 것이 최초의 시도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최광호의 사진은 퍼포먼스, 혹은 생과 사, 물질과 정신을 오가는 제의의 산물이다. 오랜 시간 몸이 화면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행위예술을 통해 그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그는 이후 아버지의 죽음을 추억하며 어머니의 신체를 포토그램으로 시도한 일화는 유명하다. 아들의 사진 작업에서 어머니는 세계를 잉태하고 자신을 해산한 인식의 본체이다. 최광호는 아버지의 산소에서, 죽음의 기억을 되돌아 어머니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유식하게 세계의 재현이나 재창조이거나, 재생이거나 부르지 않겠다. 그것은 최광호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사진을 통해 최광호는 선물을 전한다. 
불만 가득한 자가 불만을 잃어버린 자에게,
미친 것들이 덜 미친 것들에게, 
떠난 것들이 자리를 뜨지 못한 것들에게, 
죽은 자들이 산 자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이광록 ( KBS 예술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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