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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기획전
사진 미래色 2013
2013년 8월 10일 - 2013년 10월 30일



SKOPF 선정 세 작가의 고은 컨템포러리 사진미술관 전시에 대하여!
 
정주하 (사진가, 백제예술대학교 사진과 교수)

1. 먼저 - 생각해 보자면,
사진이 진실에/을 답할/드러낼 수 있을까? 이제는 거의 사라진 낭만적인 질문일 터이다. 예술의 큰 흐름에 사진이 편재되면서, 그 예술 시장/자본이 원하는 형식으로의 전화(轉化)가 만연하면서 그리고 디지털 환경이 사진의 거의 전부를 침탈하게 되면서 얻게 된 회의적 자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진과 사/진-실”은 이항동체(異項同體)의 모습으로 여겨왔으나, 이제 시대의 흐름은 그 중심에 모르페우스(Morpheus)의 입김을 불어 넣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이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가장 중요한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살아있는 한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이 질문의 용도가 모두 폐기되지는 않을 터이다. 지금 우리가 이번 SKOPF에서 선정한 세 작가의 작품을 함께 보면서 새삼 이러한 질문을 떠올리는 것은 이번 작업들이 모두 이 지점에서 여하한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이 선택한 주제를 보면, 이동근은 다문화 가정을 다룬 “초대”이고, 박홍순은 “4대강” 그리고 한경은은 여성 암 환자를 파고든 “묵정”이다. 이 작업들을 이곳에 함께 모은 것은 심사에 참여한 위원들이다. 서로가 확인하며 합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었다. 이 세 작가의 작업들은 모두 밖을 향해 앵글을 고정시켰다. 개별의 주제들이 모두 주요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사진의 가능성과 한계가 그런 것처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문제를 제시해 준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들이 접근한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유사한 -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대상을 전면(前面)에/정면(正面)에서 드러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대상들이 왜 그곳에 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떤 입장에서 보아야 하는지는 감추어두고 대상을 한껏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동근의 작업에는 물론 전혀 다른 방식이 함께 공존하기는 하다. 하나의 주제 안에 두 개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중심 작업의 태도는 동일하다. 그리고 박홍순의 작업은 풍경에 가까운 작업이기에 정면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전면(全面)을 포괄하려는 노력이 보이기에 그렇게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좀더 - 자세히 보자면,
이동근은 이 작업을 통해 우리 민족이 타민족에 가한 매우 야만적인 행위를 보듬으려는 듯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문화 가족의 한편은 이 땅에서 일해 온 “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정확히 일치한다. 구구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는 이들을 타인 시 했고 무시해 왔다. 이용해 왔으며 무시해왔고, 착취해 왔으며 또한 무시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절망적인 모순 앞에서 그가 하려는 것은 아마도 따스한 접근일 터이다. 동정과는 조금 다른 그러나 애정과 섞여있는 이러한 태도는 그의 사진 밖 행동에서 증명된다. 즉, 손해와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그들을 따라, 그들의 고향”을 다녀오는 행위 말이다. 이점은 사진이 단지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홍순은 오랫동안 땅을 훑으며 작업해 왔다. 그가 가진 생각/작업의 중심에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는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이번 4대강을 작업한 것은 아마도 애정이 섞여있는 분노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4대강이 가진 정치적 문제가 확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내재한 정치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해 왔던 땅에 대한 애정이 분노로 환치되면서 불러내 온 주제라고 생각된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 대해 시선의 각도를 바꾸라고 주문한 이영준의 의도는 충분히 옳으나, 실현되기는 어려웠던 듯싶다. 이는 박홍순이 멘토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애정과 섞인 분노로 이루어진 이번 작업의 태도를 더 냉철하게 들여다 볼 여유/의도가 없었음을 강변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더욱 세련된 인화(仁化)를 입혔다. 더 세련된 번역/해석을 위해서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작업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태도다.

한경은은 엄마를 찍었다. 아니 엄마에게 안겼다. 그녀가 선택한 이번 주제가 여성 암환자들과 함께한 “즐거운 놀이”였다는 것은, 이 작업의 태동이 “엄마”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관심이 엄마로 넘쳐흐르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감정/감성(感聲)의 공유”일 것임을 암시한다. 때문에 이번 작업이 매우 복잡한 심경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단순한 형식을 가지고 있음은, 그러니까 이미 지속해 온 자신의 관심/작업을 무너뜨리거나 뒤엎으려는 시도가 불필요/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묵정 이전의 작업과 그 접근 형식이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대상을 일정한 거리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관찰하고 해석해 내는 일은 아마도 우리 민족에게 잘 맞지 않는 작업방식일 것이라 생각해 왔다. 격정과 몰입이 쉬운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속성을 가지고 하는 단순한 판단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한경은의 작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거리를 유지하고, 카메라 앵글의 높이와 화각을 일치시키는 작업방식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을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전혀 객관적이거나 유형적(typology)이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 이유만 댄다면 그녀가 현실로부터 절단해 놓은 화면은 전혀 고립되지 않았다. 화면 밖으로 이어진 링거 줄은 우리가 보아야 하는 대상이 단지 화면 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유형학 사진들은 중앙에 있는 대상을 둘러 싼 세면을 단순하게 처리함으로써 그 대상을 고립시키는 형식을 취한다. 확인해 보시라> 즉, 정황을 살피며 읽어내야 하는 텍스트인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화면 안에서 빼어내 밖으로까지 이어내려는 구체적 의도야 아니겠지만 그렇게 읽힌다.
 

3. 이제 - 마치자면,
사진가가 무엇을 대상으로 다루던지 그 대상의 존재 맥락까지 집어가며 전부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으로 확인한 대상을 카메라에 담을 때 자연스레 재현의 한계/차이를 느낄 것이며, 동시에 작가 역시도 어느 한편에 서서 그 대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대상에 혹은 대상을 통해 진실을 표현한”다는 말은 가짜다. 그렇다면 사진이 다루는 대상과 작가와의 관계는 어떠한 것일까? 관계라는 용어가 성립되기는 할까.
다시, 우리가 사진을 본다고 할 때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속에 표현된 대상이다. 막상 대상을 탑재하고 있는 그 사진이라는 조건은 한편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거나 깊이 생각해 보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대상의 개별적 의미나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의 역할 등을 잘 따져 보려고 애쓰게 된다. 이러한 습관화된 사진 보기의 근원은 아마도 매체가 가진 기술적인 측면을 보편적인 관람자가 다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아가 보는 사람에게는 이미 익숙하여 해석 가능한 것이 바로 그 사진으로 재현된 대상이기에 그러할 터이다. 종종 작가가 매체의 재현-방식에 천착하여 개발한 새로운 접근 시도 혹은 기술적인 탐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작가로써는 다소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으나 이 지점이 바로 사진의 한계이자 새롭게 거듭나야 하는 시작지점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사진은 대상과 동침하면서 존재를 허락 받으나, 바로 그 대상을 배반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 세 작가의 동침과 배반을 공시적(共時的)으로 비스듬히 향유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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