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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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해외교류전
Sehen Zen 시선視禪
2014년 5월 10일 – 7월 30일


ⓒ 요제프 스노블, 쯔뷔셴 짜이트, 수호천사, 99x122cm, 1992


Zen-Sehen
생각과 봄.
1.
클라우디아 훼렌켐퍼Claudia Fährenkemper와 요제프 스노블Josef Šnobl은 중부-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2.
방금 두 사람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3.
사진을 찍기/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 앞에 서야 한다. 대상으로부터 반사되어 내게로 다가온 빛의 집적이 곧 사진일 터이다. 그러니 사진을 만드는 일은 매우 쉽다. 누구나 빛을 집적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앞”에 서려는 의지만 있다면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쉬운 방법 덕분에 지금 온 세계는 사진가로 넘쳐흐르며, 개개의 일상 안으로 사진이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 더구나, 디지털 이미지 집적集積의 눈부신 발전으로 도구가 간단하면서도 다양해져서 단지 사진기寫眞機라는 이름의 매체 이외에도 복합적인 도구가 이용되어 더욱 그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전화기와의 결합이나, 움직이는 물체에 장착한 카메라는 그 동안 사진가/인간이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촬영이 가능해졌다. 이제 이윽고, 우리는 이미지/영상의 과잉/잉여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나아가 그로 인해 전혀 다른 현실(시뮬라시옹, Simulation)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실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그 사이에 있는 ‘경계’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몸에 두 개의 개체를 지닌 인간의 몸처럼 (시메트리, Symmetry한 형태를 통해) 우리는 현실과 허구를 한 몸에 허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경계가 없이.
그러나 이러한 도구의 혁혁한 변화와 변형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함없는 질문이 있다. 조작해서 만들어내는 사진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림이 아니라면, 어찌 되었던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가는 그 앞에 서야 한다. 왜? 왜 하필 그 앞인가?

4.
클라우디아 훼렌켐퍼는 바로 이 문제에 천착한다. 그녀의 시선은 직선이다. 에두름이 없이 그 대상의 본질 깊숙이 시선을 꽂는다. 그녀가 지금까지 작업해 온 대상들은 어떤 매개물들이다.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에너지를 얻는 도구이거나,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벌레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갈등을 확인하는 물체들 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대상들의 사회적/정치적/도덕적 관념이나 의미들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 대상들이 가진 역사성이나 관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그 자체에 몰입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사진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그 대상의 형상과 표면에 흐르는 물질감이 우선한다. 그녀가 이미 판단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개입하여 대상에 의미판단을 부여하는 것은 과욕過慾일 터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욕심을 드러내고자 한다.

5.
처음 그녀가 작업한 것은 거대한 크기의 ‘기계’들이다. 대형 포맷의 흑백 필름에 재현된 그 대상들은 그러나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물체처럼 보인다. 비록 정적인 분위기를 가진 서 있는 기계들이지만 그 기계가 놓인 장소는 작업장이다. 이미 긴 시간 동안 기계가 작동되어 일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래서 배경과 대상의 이질적인 충돌이 없다. 매우 한적하게 보이는 풍경 속의 기계들이 자신의 업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일 따름이다. 따라서 보는 우리는 그 차가운 금속 덩어리에서 대상을 관통하여 우리와 연결되는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그 기계가 작업한 결과물로 인간의 삶에 변화가 가능할 터이니 말이다. 또한, 기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미 조형적 제작 과정을 거친 물체들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단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는 자체가 조형성을 담보하고 있기에 그렇다. 이러한 외형적인 아름다움과 관계의 교차점에서 느끼는 따스함은, 그녀의 사진을 보는 우리에게 같은 온도의 따스함을 선사한다. 사진의 힘이다.

6.
같은 작가의 전혀 다른 작업을 볼 때 우리는 놀란다. 적어도 보이는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상/감성의 문제일 때는 그렇다. 이번에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아르모르Armor 시리즈는 같은 물질의 작업이다. 쇠다. 기계에 쓰인 것과 유사한 쇠로 된 갑옷이다. 이 작업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는다. 검은 배경에 측면의 조형이 강조된 이 사진들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갑옷들이다. 갑옷이란 무엇이던가? 그것은 타인의 피를 욕구하는, 혹은 이미 타인의 피에 흠씬 적시어진 그런 도구인 것이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상대와 대결의 의지를 불태우며 노려보고 있었을 장면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니 분명하게 그릴 수 있다. 갑옷의 표면에는 무수한 흔적이 보인다. 이 갑옷이 전장에 부름을 받았든 아니든, 우리는 이 흔적을 따라 함께 전쟁터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동시에 4D 영화관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혼란한 피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시선을 통해서는 아름다운 질감이 함께한다. 아마도 지속광持續光을 사용한 듯 보이는 이 작업의 표면에서는 흑백 섬유질 인화지Fiber Based Paper가 주는 아름다운 재질감과 강한 톤. 그리고 작가가 암실에서 노광을 주면서 행했을 여러 행위가 확고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로 하여금 조금 전에 맡았던 전쟁의 피 냄새를 여과해주는 혹은 탈각脫却하게 해주는 그런 장치로서 말이다.

7. 
이 작업들과 함께 전시하는 이마고Imago 시리즈는 더욱 미시微視적인 방식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서 사는 벌레들에 대한 접근은 그러나 매우 거대巨大한 모습이다. 우리의 눈이 가진 한계 즉 일정 범위 이상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없다는 것을 도구로 극복하면서 작업한 때문이다. 모든 경계에 있는 것은 다 도구를 요구하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땅 안쪽을 파헤치려면, 볼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을 다시 탐색하려면, 그리고 이처럼 실재하나 지금 내 눈에 감지되지 않는 어떤 작은 물체를 보고자 할 때 도구가 필요하다. 클라우디아 훼렌켐퍼는 그 도구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또 통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대상과 도구가 경계 없이 혼융混融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흐트러진 경계 안쪽에 클라우디아 훼렌켐퍼가 웅크린 채 커다란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즉, 이마고의 형태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벌레와의 관계 속에서 가지고 있는 습득된 이미지가 아니라, 어떤 환영을 가져다 준다. 보이는 형태가 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주관적 느낌이 함께 보이는 이미지 말이다. 벌레가 찍힌 이미지를 통해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원형적 고정관념을 다시 끄집어낼 수가 있다. 어쩜 이것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말년에 애써 강조하고자 했던 ‘이퀴벌런트Equivalent’와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것을 보고 유사한 것을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지닌 선입관념을 통해 그 대상에 고정관념을 부여하는 것 말이다.

8.
이처럼,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작업(들)에는 복수複數의 태도가 스며있다.

 

정주하(사진가, 백제예술대학교 사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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