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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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기획전
사진 미래色 2014
정지현, 지영철
2014년 8월 12일 – 2014년 11월 19일




ⓒ정지현, Demolition Site 01 Inside, Pigment print, 120x160cm, 2013

정지현, 철거를 잊지 말라고 사진 찍는다.

  도시개발과정에서 일어나는 철거는 사진가들의 단골주제다. 건축물의 속살이 급격히 드러나는 철거장면은 사진의 구미를 당기는 좋은 소재다. 그리고 철거에 단골로 따라다니는 철거민들의 피맺힌 절규와 용역들의 폭행의 흔적도 좋은 사진의 피사체다. 문제는 철거장면을 찍는 사진가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철거의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철거현장을 가봐도 붉은 글씨로 철거를 반대하는 피맺힌 절규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도시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으로 성장하는 한 철거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철거도 비극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따라서 철거현장을 사진 찍는다는 행위의 의미도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찍어내는 사진의 방법론이다.

정지현은 철거현장을 남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보기 위해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한다. 그것은 붉은 페인트로 철거된 건물의 일부를 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철거 도중의 건물은 정지현의 것이 된다. 물론 그 붉은 색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건물은 며칠 내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철거될 것이므로 정지현의 퍼포먼스의 흔적은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정지현 한 사람의 기억에만 남는다. 그리고 철거는 사회적 이슈라는 보편적인 층위를 벗어나 정지현의 현장탐험이라는 개별적인 차원으로 넘어간다. 이 작업은 실로 탐험이라고 할 만 한데, 반쯤 철거되다 만 건물의 잔해는 위험하다. 그리고 잘려나간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만큼이나 무서운 경비원들의 시선도 위험하다. 정지현은 그런 위험을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자국을 남긴다.

사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은 사회적이라기 보다는 대단히 조형적이다. 그것은 프랑스의 사진가 조르쥬 루스의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는 철거 도중의 건물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멀리서 보면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보이도록 붉은 색을 칠한 후 사진 찍는다. 그 도형은 실제로는 불규칙한 형태이나 멀리서 본 시점으로는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보이도록 기형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루스의 작업은 어디까지나 유희적이다. 그는 건물이 철거 되는 데서 생기는 사회적 비극이나 상처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필요한 것은 불규칙하고 요철이 심한 표면일 뿐이다. 반면 정지현의 작업은 전혀 유희적이지 않다. 그에게는 철거의 무게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그러나 사진가는 도시사회학자 같은 시선으로 철거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그는 사진가로서 자신만의 시선, 자신만의 장소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붉은 페인트 칠하기였다. 며칠 가지 않는 페인트 자국을 통해 철거현장은 일시적으로 사진가의 공간으로 탈바꿈 한다.

정지현에게 사진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그리고 심지어 사진의 대상을 변형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변형은 장소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며칠 동안만이지만 정지현의 붉은 페인트가 묻어 있던 곳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철거로 사라질 장소를 기억하게 해주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그 장소는 철거로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간이 가진 소거의 폭력 앞에 무기력한 것이다. 봄날 며칠 못 가는 벚꽃이 아름답듯이, 정지현의 붉은 페인트도 그래서 아름다워 보인다.


ⓒ지영철, 38.00.00, Gelatin Silver Print, 50x100cm, 2013

지영철, 분단을 잊지 말라고 사진 찍는다

  분단의 풍경이 저리도 편안해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우리는 분단의 체제 속에 반 세기 이상을 살았고 그냥 억지로 살은게 아니라 즐겁고 흥분되고 보람 있게 살아 왔다. 애도 낳고 학교도 졸업하고 좋은 회사도 다니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분단을 잊었다고 야단 치면 안 된다. 우리는 분단을 잊은 것이 아니라 뼛속 깊이 각인시켜 왔고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쟁여놓고 있었다.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쳐 박고 길을 걷는 고등학생에서부터 카지노 판에 눈을 꽂은 강원랜드 도박장의 아저씨까지, 분단을 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분단은 우리의 풍경 속에 녹아 들어 있다. 분단의 흔적, 혹은 잔존물은 이제는 모뉴먼트가 되어 버렸다. 분단의 모뉴먼트는 꼭 높다란 기념비만이 아니라 동해안에 버려져 있는 초소에서부터 북괴군 흉상, 언젠가는 철거되고 말 철조망 등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뉴먼트를 지나쳐 버린다. 그래서 지영철은 그것들을 사진으로 다시 한 번 모뉴먼트로 만든다. 모뉴먼트란 무엇인가? 어떤 분이 돌아가시고 사태가 종료됐음을 알리는 것이다. 분단은 진행 중인데 모뉴먼트가 있을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하면 분단은 진행중인 것이 아니라 멈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홍대 앞 클럽에서 불금을 태우는 젊은이들이나 레이크사이드 CC에서 골프 치는 사장님들이 분단의 눈물을 감추며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분단이 현실의 수위로 떠오르냐면 외국에서 우리를 볼 때다. 우리는 나라이름을 한국으로 부르는데 해외 뉴스를 보면 반드시 사우스 코리아라고 한다. 사우스 코리아라는 이름은 분단의 트라우마가 겉으로 떠오르는 아주 작은 통로이다. 그런데 분단은 남한과 북한만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코리아’라는 이름과 ‘사우스 코리아’라는 이름도 갈라 놓았다. 즉 우리를 코리아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사우스 코리아라고 부르는 사람들로 갈라 놓았다. 이름이나 사람만 갈라진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지각과 인지도 갈라졌다. 그래서 분단의 트라우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하지만 세월이 깊어질수록 조용하게 깊은 곳으로 들어앉아 있다.

그래서 지영철의 사진은 조용하기만 하다. 분단에 대한 기념판이 서있는 미국 콜로라도 모팻의 풍경도 모든 것을 잊은 듯이 조용해 보인다. 미국이 왜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잊지 않았다. 지영철은 잊지 말라고 사진 찍지는 않는다. 그는 잊었다고 사진 찍는다. 혹은, 사진이 적절한 기억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고 사진 찍는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겉으로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육중한 대전차 장애물도, 살을 찢는 철조망도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분단을 씻어버리고, 남북한이 다시 통일해야 하는 이유마저도 씻어버렸다. 당장 남북한이 다시 통일되어서 좋은 것 보다도 사람들의 걱정은 수천조원이 든다는 통일비용이다. 통일은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손익을 따지며 걱정해야 할 일이 돼버렸다.

이 상황에서 분단의 모뉴먼트들은 더 이상 무엇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이벤트의 잔존물일 뿐이다. 사실 사진 찍기에 따라서는 그것들을 다시 모뉴먼트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파노라마 포맷이 아닌 정상적인 포맷으로 한껏 올려다 본 앵글로 찍으면 모뉴먼트로 우뚝 서 보일 것이다. 그런 식의 가짜 모뉴먼트 만들기는 지영철의 할 일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분단의 모뉴먼트가 없는 분단지역을 더 집중해서 보여준다. 한국과 미국의 북위 38도선에는 신기하리 만치 분단의 모뉴먼트가 적다. 세월 속에서 다 녹아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상의 풍경 속에 녹아 들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고 있는 전쟁의 상처, 사람들은 그 안에서 편히 누워 자고 산책하고 아파트를 세운다. 모뉴먼트 없는 전쟁, 그래서 잊혀질 위기에 처한 전쟁을 보여주는 지영철의 앵글은 포착이 아니다. 그의 파노라마 포맷은 대지를 훑는 부드러운 시선이다. 렌즈로 어디를 겨냥한 후 딱 집어내는 시선이 아니라 천천히 대지를 산책하는 시선이다. 왜냐면 급할 것이 없으므로. 통일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농부가 밭을 갈 듯 사진으로 분단의 풍경을 묵묵히 갈아내는 지영철의 시선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영준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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