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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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본관 기획 초대전
寫眞, 시선의 현대성
2012년 3월 24일 - 2012년 6월 10일


ⓒ 오형근, 붉은 체육복을 입은 해병, 2010년 5월, Pigments on Fine Art paper, 127x100cm, 2010


사진, 현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 정체성 실험과 미

김영옥 (이미지 비평가)
1. 사진 이미지, 즉물적 재현과 해석 사이에서

1839년 다게르의 사진이 등장한 이후 사진은 19세기 내내 예술성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의 천박한 사회는 역사를 더럽히는 다게르가 고안해 낸 싸구려 물건 때문에 자아도취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보들레르의 말은 당시 사진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정한 예술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사진은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전통적인 예술 개념에 비추어 그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인 예술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질문하게 만드는 매체로 주목받게 된다.
독일 바우하우스 운동을 이끌었던 모홀리 나지 Moholy-Nagy처럼 사진의 기술적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예술가들은 사진에 내재한 새로운 시각 Neue Optik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사진의 기술적 가능성이 지각과 의식구조의 혁명을 이끌고, 이로써 그 어떤 매체보다 더 활발하게 예술작업의 미학적 차원을 사회적ㆍ정치적 차원과 만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에 내재한 이러한 혁명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조작을 은폐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지시대상을 매개 없이 그대로 재현한다는,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진의 그 직접성에 대한 믿음은 사진이 특정 문화ㆍ정치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음을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세기 초 사진 기술이 가져온 시각적 혁명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예술가들이나 철학가들은 사진 또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브레히트는 “어떤 사건을 ... 본다고 해서, 이해된 것은 아니다”는 말로 손쉬운 기술 낙관주의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리고 벤야민은 카메라 렌즈를 통한 이미지 포착을 신체 내부로 깊숙이 파고드는 외과의사의 촉각적 개입으로 비유하며 광학적 무의식을 언급했다. 카메라 렌즈는 세포조직처럼 미세한 것에서부터 천체의 움직임처럼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눈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을 포착해낸다. 또한 존재하되 보이지 않던, 그래서 의식되지 않던 사물들을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낯선 것, 무의식적인 것의 세계를 연다.
기존의 시각체계와 규범적 기호 코드를 거슬러 새로운 해석의 공간을 펼치는, 벤야민이 광학적 무의식이라는 말로 표현한 사진의 이러한 혁명적 가능성은 이제 21세기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또 다른 차원에 도달했다. 이 새로운 차원에서 사진은 지시대상을 인공적으로 연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시대상 자체를 현상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그리고 그 만들어진 지시대상을 무한 변형의 가능성 속에 풀어 놓음으로써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사진은 ‘거짓말의 거장’으로 위용을 뽐내면서 실재와 가상 사이의 경계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다. 무한대로 펼쳐지는 이러한 인공의 세계, 시물라크르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사진의 사회적 기능, 예술적 가치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시대상 없이 이미지를 자체 생산하게 된
사진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할 것인가? 이데올로기 왜곡과 이데올로기 해체 사이에서 사진은 어떤 진자 운동을 할 것인가?


2. 사진 이미지, 재현을 넘어 시물라크르의 새로운 정치학으로

이번 고은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세 작가, 데비한, 배찬효, 김희정의 사진들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공적으로 제작된 이미지들을 통해 유쾌하고도 날카로운 정체성 실험을 전개한다. 기존의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구축한 정체성들의 허구성을 비틀고 유희적으로 새로운 정체성들을 빚어낸다. 즉 이들은 거짓말을 통해 기존 지시대상들의 ‘거짓된 왜곡된 정체성’을 해체적으로 드러낸다.
데비한의 <여신들 Graces> 연작은 리믹스(Re-mix)의 시대정신 속에서 정체성의 물음을 매우 ‘우아하게’ 제시한다. 그녀는 서구의 미 개념을 상징하는 그리스 비너스의 두상이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누려온 미학적 위상을 사회문화적으로 질문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해 왔다. <여신들>은 미 산업과 스포츠 산업 전체를 관통하는 외모 추구 혹은 무모한 열망의 허구성에 직면해 일상의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정체성의 속살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미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그리스 조각품들의 머리와 한국의 일상적 현실을 살고 있는 여성의 질료적ㆍ생활세계적 몸으로 이루어진 ‘미의 여신들’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 미학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 edle Einfalt und stille Große’을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변형시킨다. 특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성들의 몸을 찍은 사진들은 디지털로 처리됨으로써 대리석 조각과 같은 질감을 만들어낸다. 자위나 유방암 수술 등 삶의 경험과 역사성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여성들의 현실적 몸이 고대 그리스 조각을 대할 때의 미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이데올로기적으로 유포되어 온 이상화된 미의 전형성이 허구임이 드러난다. 이 사진들이 선사하는 미적 쾌감은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심미적 성찰성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배찬효의 <복장 속의 실존> 연작은 영국귀족 여성의 옷을 입고 영국여성이 되어보는 동양 남자의 시도를 전시한다. 한국남자로서 영국에서 겪은 자신의 ‘소외감과 편견’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전략으로 그가 채택한 ‘복장도착’은 우선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전복적 실험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실험이 젠더의 관점에서 수행됨으로써 젠더 정체성의 수행적 성격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서구 백인 중심주의가 제국주의적 우월감을 위해 문화 이데올로기로 구축한 오리엔탈리즘은 무엇보다도 정체성의 문제에서 극명해진다. 배찬효는 ‘대영제국’의 권력을 전시하는 귀족복장 중에서도 특히 여성복장으로 자신을 재현함으로써 서구의 백인 제국주의가 비서구를 식민화한 과정이 (‘나비부인’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문화적으로 비서구의 여성화를 통해 진행되었음을 폭로한다.
김희정의 <핑크와 백색> 연작은 여성/성에 부과된 순결과 부드러움, 미성숙의 문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질문한다. 오브제를 눈처럼 하얗게 뒤덮은 백색, 혹은 핑크색 가루는 그 오브제의 실재를 부인하거나 오인하면서 정체성을 외부에서 강제한다. 일체의 동요나 혼란이 삭제된 채 적요함이 강조되는 이러한 백색 혹은 핑크색의 사진들은 그 적요함이 억압하고 있는 실체의 혼종성과 다양성을 역설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백색의 하트 오브제 아래 살짝 스며 나오는 (핑크가 아닌) 붉은 액체는 그러한 폐제가 야기하는 히스테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여성들은 나이나 삶의 다중적인 경험과 무관하게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처녀지’로 상상된다. 이러한 상상은 종종 소녀의 핑크빛 순진무구한 - 다시 말해서 경험이 새겨져 있지 않은 - 얼굴에, 과도할 정도로 성적 유혹의 강도가 센 성숙한 여성의 몸을 결합시킴으로써 ‘기괴하게 인공적’인 여성/성을 창조해낸다. 여성/성에 대한 이러한 남성 판타지는 현실 속의 여성들을 박제로 만들며 여성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일관되게 비사회적이고 유령적인 것으로 만든다. 김희정의 <핑크와 백색> 연작은 남성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여성/성의 이러한 ‘거짓말’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서, 즉 ‘거짓된 조작’을 통해 대단히 섬세하게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백색이 지워버리고 핑크가 덧칠해버린 여성/성의 실체적 삶은 바로 그 과잉으로 넘쳐나는, 적요하게 지배하는 백색과 핑크 아래 미세한 소름으로 스멀스멀 번져 나간다.
여성/성, 여성의 미, 아시아인 등 기존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 문화 이데올로기를 질문하는 데비한, 배찬효, 김희정의 사진 작업들은 이로써 동시에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사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재현의 가장 강력한 매체로 간주되었던 사진은 지시대상 없는 이미지의 세계를 열고 이제까지의 이미지 세계가 알지 못했던 실험들을 하고 있다. 20세기 예술가들이나 미학 이론가들을 사로잡았던 사진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질문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도달했다. 사진은 사회적 삶과 완전히 동떨어진 채 자기만의 유희나 축제에 잠겨버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재현적 놀이에 중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참여한 세 젊은 작가들은 사진의 비재현적 기술이 어떻게 더 유쾌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지각과 인식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사진은 앞으로 사회와 아주 새롭고 혁신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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