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en Zen 시선視禪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이전전시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해외교류전

Sehen Zen 시선視禪

작가
Josef Šnobl
전시 기간
2014/05/10 - 2014/07/30

고은사진미술관은 프랑스의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에 이은 두 번째 해외교류전으로 세계사진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독일의 현대사진을 소개한다.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에서 빛을 발했던 독일사진의 전통은 1960년대 이후 두 축으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Art Academy of Düsseldorf를 주축으로 한 독일 유형학 사진Typological Photography의 전통으로, 베허부부Bernd and Hilla Becher와 그 제자들인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 Gursky 등이 그 대표적인 사진가이다.

독일에서 유형학 사진은 하나의 전통으로서, 1920년대 아우구스트 잔더에서 1930년대 알베르트 랭거-파츠Albert Renger-Patzsch의 신객관주의New Objectivity를 거쳐, 1960년대 베허부부에 의해 양식화되었다.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대상을 가치중립적이고 중성적 태도로 접근하는 유형학 사진은 당대의 풍경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사건 중심이 아닌 대상 중심의 기록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즉, 후기 산업사회의 단면을 유형성을 통해 보여주면서 현대성을 획득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사진 매체만의 기계적 특성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유형학 사진에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삭제한다면 그것은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2000년대에 한국에서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던 이른바 유형학 스타일의 사진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형학 사진에 비해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독일사진의 또 다른 한 축에는 에센Essen의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를 중심으로 한 주관주의 사진Subjective Photography의 전통도 있다. 흥미롭게도 주관주의 사진은 내용적인 측면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유형학 사진과 대척되는 지점에 놓여있다. 유형학 사진이 차이보다 유사에 관심을 갖는다면, 주관주의 사진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가능성과 힘에 주목한다. 오토 슈타이너트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전통을 잇는 라즐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의 뉴 비전New Vision과 알베르트 랭거-파츠의 신객관주의를 받아들여, 대상의 정확하고 충실한 재현을 통해 사진가의 주관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고은사진미술관과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이번 전시 《Sehen Zen 시선視禪》에서는 이러한 주관주의 사진 계열에 속하는 클라우디아 훼렌켐퍼Claudia Fährenkemper와 요제프 스노블Josef Šnobl의 작업을 보여준다. 이들은 중부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로서, 두 사람 모두 오토 슈타이너트의 영향권에 있는 아르노 얀센Arno Jansen의 제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작업방식이나 작품스타일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는 클라우디아 훼렌켐퍼는 쾰른 응용과학대학교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Cologne에서 아르노 얀센 교수에게 사진을 배웠고,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와 낸 후버Nan Hoover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사진이력에 걸맞게 매우 스트레이트하면서도 섬세한 작업과 대상을 냉철하고 중성적인 형식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동시에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될 작업은 가장 최근작인 박물관의 갑옷을 다양한 측면에서 포착한 〈아르모르Armor〉 시리즈와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을 이용한 고도로 정밀한 작업인 〈이마고Imago〉 시리즈이다. 두 시리즈 모두 흑백사진으로, 강렬한 톤과 독특한 계조를 통해 사진의 물성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드러낸다. 그녀의 사진은 언뜻 보기에는 유형학 사진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상을 표현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주관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갑옷의 느낌에 따라 각기 다른 톤의 배경을 선택하고 그에 걸맞은 흑백의 다양한 계조를 미묘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미시적인 이미지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클라우디아 훼렌켐퍼가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정직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사진에 담아냈다면,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요제프 스노블은 사진을 통한 내적 관찰과 자기 성찰의 과정을 진지하게 보여준다. 요제프 스노블 역시 쾰른에서 아르노 얀센 교수에게 사진을 배웠다. 그는 회화와 사진을 접목시키거나 다양한 후가공 방식을 통해 이른바 만드는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대상에 대한 자유롭고 풍요로운 해석이라는 주관주의 사진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하면서 느낀 경계인으로서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이 드러나는 〈쯔뷔셴 짜이트Zwischenzeit〉 시리즈와 쾰른Cologne, 바젤Basel, 베니스Venice의 카니발 풍경을 각기 다른 색채와 분위기로 담아낸 〈카니발Karnevals〉 시리즈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날짜별로 구성하여 하나의 달력으로 만든 〈카렌다리움Kalendarium〉 시리즈가 소개된다. 요제프 스노블에게 사진은 주변의 일상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전시 제목인 《Sehen Zen 시선視禪》은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전시는 우리가 독일 현대사진의 한 축을 바라본다는 의미는 물론, 사진이라는 매체를 향한 두 작가의 시선이라는 의미, 이 두 사람이 대상을 직시하는 동시에 그 너머를 바라본다는 의미 그리고 그 시선을 넘어서서 자신을 성찰하는 데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우리가 전시를 통해 확인한다는 의미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들의 사진에서 각기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공존하는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만날 수 있다.

주관주의 사진은 다양한 사진형식을 통해 사진적 표현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접근방법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구르스키는 베허부부의 제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오토 슈타이너트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와 마찬가지로 구르스키가 유형학적 오브제를 취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오토 슈타이너트의 사물에 대한 자유로운 자각과 주관적인 해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블록버스터 사진전 즉 대형 상업 전시가 연이어 개최되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사진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거나, 사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국·공립미술관에 아직 사진분과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문가도 부족한 실정이며, 처음으로 사진전문기획자가 국립미술관에 기용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바로 한국사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은사진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서 그리고 사진전문미술관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많고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 한국사진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진을 역사적 맥락을 통해 수용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사진의 흐름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한국사진의 현실과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고은사진미술관이 해외교류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은사진미술관 큐레이터  이미정 

요제프 스노블

1954   체코 프라하 출생 
1979    독일로 이주 

학력                                                                                      

1988    쾰른 응용과학대학교 사진전공 졸업, 독일 

 

개인전                                                                                      
2013    초상화(켐니츠 프로젝트), 켐니츠, 독일
2012   카니발,피두키아 갤러리,오스트리바,체코
2011    니더라우셈의 매주 일요일,카메라 옵스쿠라프로젝트,독일
2009    무척추동물(나비 정원 예술 프로젝트),자인성,독일
2007    아헨의사진의 길,로테 에르데,독일
2006    소떼라네아,로카파올리나,페루지아, 이탈리아
2005    ...도착...,라인강-베르지구의 문화프로젝트, 독일
             꽃들을 읽다,플로랄,쾰른,독일
2003    카니발,페카갤러리,프라하,체코
2002    카렌다리움,발라프 갤러리,쾰른,독일
             카니발,쾰른시립박물관,쾰른,독일
2000    카니발,슈펜하우어갤러리,쾰른,독일
             장소의약속,예술 단체율리히,독일
1997    죽음만큼 확실한,바클라바스팔리 갤러리,프라하,체코
             커피숍,독일문화원,프라하, 체코
1995    쯔뷔셴짜이트,보훔뮤지엄,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독일
             쯔뷔셴짜이트,네오브롬갤러리,브루노,체코
             1주일 간의 오픈 아뜰리에,몹,라이프치히,독일
              나르던 포토 페스티벌,그롤갤러리,네덜란드
              이분법의 불가사의,로프트,쾰른,독일
1992    누드의밤,그라우베르트갤러리,함부르크,독일
             쯔뷔셴짜이트,임호프갤러리,에센,독일
             수호천사와 다른 존재, 로프트,쾰른,독일
1991    누드,포마갤러리,프라하,체코
             비유,로프트,쾰른,독일 

​출판                                                                                      

2009   『사진의 길』, 헬리오스 출판사, 아헨, 독일 
2002   『카니발』, 에몬스 출판사, 쾰른, 독일 
1999   『101 연합의 도시』, 듀몬트 출판사, 쾰른, 독일 

참선
생각과 봄.
1. 
클라우디아 훼렌켐퍼Claudia Fährenkemper와 요제프 스노블Josef Šnobl은 중부-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2. 
방금 두 사람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3. 
사진을 찍기/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 앞에 서야 한다. 대상으로부터 반사되어 내게로 다가온 빛의 집적이 곧 사진일 터이다. 그러니 사진을 만드는 일은 매우 쉽다. 누구나 빛을 집적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앞”에 서려는 의지만 있다면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쉬운 방법 덕분에 지금 온 세계는 사진가로 넘쳐흐르며, 개개의 일상 안으로 사진이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 더구나, 디지털 이미지 집적集積의 눈부신 발전으로 도구가 간단하면서도 다양해져서 단지 사진기寫眞機라는 이름의 매체 이외에도 복합적인 도구가 이용되어 더욱 그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전화기와의 결합이나, 움직이는 물체에 장착한 카메라는 그 동안 사진가/인간이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촬영이 가능해졌다. 이제 이윽고, 우리는 이미지/영상의 과잉/잉여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나아가 그로 인해 전혀 다른 현실(시뮬라시옹, Simulation)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실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그 사이에 있는 ‘경계’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몸에 두 개의 개체를 지닌 인간의 몸처럼 (시메트리, Symmetry한 형태를 통해) 우리는 현실과 허구를 한 몸에 허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경계가 없이. 
그러나 이러한 도구의 혁혁한 변화와 변형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함없는 질문이 있다. 조작해서 만들어내는 사진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림이 아니라면, 어찌 되었던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가는 그 앞에 서야 한다. 왜? 왜 하필 그 앞인가? 

4. 
클라우디아 훼렌켐퍼는 바로 이 문제에 천착한다. 그녀의 시선은 직선이다. 에두름이 없이 그 대상의 본질 깊숙이 시선을 꽂는다. 그녀가 지금까지 작업해 온 대상들은 어떤 매개물들이다.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에너지를 얻는 도구이거나,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벌레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갈등을 확인하는 물체들 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대상들의 사회적/정치적/도덕적 관념이나 의미들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 대상들이 가진 역사성이나 관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그 자체에 몰입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사진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그 대상의 형상과 표면에 흐르는 물질감이 우선한다. 그녀가 이미 판단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개입하여 대상에 의미판단을 부여하는 것은 과욕過慾일 터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욕심을 드러내고자 한다. 

5. 
처음 그녀가 작업한 것은 거대한 크기의 ‘기계’들이다. 대형 포맷의 흑백 필름에 재현된 그 대상들은 그러나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물체처럼 보인다. 비록 정적인 분위기를 가진 서 있는 기계들이지만 그 기계가 놓인 장소는 작업장이다. 이미 긴 시간 동안 기계가 작동되어 일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래서 배경과 대상의 이질적인 충돌이 없다. 매우 한적하게 보이는 풍경 속의 기계들이 자신의 업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일 따름이다. 따라서 보는 우리는 그 차가운 금속 덩어리에서 대상을 관통하여 우리와 연결되는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그 기계가 작업한 결과물로 인간의 삶에 변화가 가능할 터이니 말이다. 또한, 기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미 조형적 제작 과정을 거친 물체들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단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는 자체가 조형성을 담보하고 있기에 그렇다. 이러한 외형적인 아름다움과 관계의 교차점에서 느끼는 따스함은, 그녀의 사진을 보는 우리에게 같은 온도의 따스함을 선사한다. 사진의 힘이다.

6. 
같은 작가의 전혀 다른 작업을 볼 때 우리는 놀란다. 적어도 보이는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상/감성의 문제일 때는 그렇다. 이번에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아르모르Armor 시리즈는 같은 물질의 작업이다. 쇠다. 기계에 쓰인 것과 유사한 쇠로 된 갑옷이다. 이 작업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는다. 검은 배경에 측면의 조형이 강조된 이 사진들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갑옷들이다. 갑옷이란 무엇이던가? 그것은 타인의 피를 욕구하는, 혹은 이미 타인의 피에 흠씬 적시어진 그런 도구인 것이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상대와 대결의 의지를 불태우며 노려보고 있었을 장면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니 분명하게 그릴 수 있다. 갑옷의 표면에는 무수한 흔적이 보인다. 이 갑옷이 전장에 부름을 받았든 아니든, 우리는 이 흔적을 따라 함께 전쟁터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동시에 4D 영화관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혼란한 피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시선을 통해서는 아름다운 질감이 함께한다. 아마도 지속광持續光을 사용한 듯 보이는 이 작업의 표면에서는 흑백 섬유질 인화지Fiber Based Paper가 주는 아름다운 재질감과 강한 톤. 그리고 작가가 암실에서 노광을 주면서 행했을 여러 행위가 확고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로 하여금 조금 전에 맡았던 전쟁의 피 냄새를 여과해주는 혹은 탈각脫却하게 해주는 그런 장치로서 말이다. 

7.  
이 작업들과 함께 전시하는 이마고Imago 시리즈는 더욱 미시微視적인 방식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서 사는 벌레들에 대한 접근은 그러나 매우 거대巨大한 모습이다. 우리의 눈이 가진 한계 즉 일정 범위 이상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없다는 것을 도구로 극복하면서 작업한 때문이다. 모든 경계에 있는 것은 다 도구를 요구하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땅 안쪽을 파헤치려면, 볼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을 다시 탐색하려면, 그리고 이처럼 실재하나 지금 내 눈에 감지되지 않는 어떤 작은 물체를 보고자 할 때 도구가 필요하다. 클라우디아 훼렌켐퍼는 그 도구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또 통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대상과 도구가 경계 없이 혼융混融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흐트러진 경계 안쪽에 클라우디아 훼렌켐퍼가 웅크린 채 커다란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즉, 이마고의 형태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벌레와의 관계 속에서 가지고 있는 습득된 이미지가 아니라, 어떤 환영을 가져다 준다. 보이는 형태가 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주관적 느낌이 함께 보이는 이미지 말이다. 벌레가 찍힌 이미지를 통해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원형적 고정관념을 다시 끄집어낼 수가 있다. 어쩜 이것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말년에 애써 강조하고자 했던 ‘이퀴벌런트Equivalent’와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것을 보고 유사한 것을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지닌 선입관념을 통해 그 대상에 고정관념을 부여하는 것 말이다. 

8. 
이처럼, 클라우디아 훼렌켐퍼의 작업(들)에는 복수複數의 태도가 스며있다. 

 

사진가, 백제예술대학교 사진과 교수  정주하
TOP
유튜브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