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7일부터 5월 27일까지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에서는 고은사진미술관 연례 기획 《중간보고서- Photographs 2001-2015 By Seung Woo Back》전을 선보인다. 한국사진의 세계화와 사진인구의 저변 확대를 목표로 하는 고은사진미술관은 개관 이래 다양한 국내외 기획전시를 통해 한국사진의 스펙트럼을 넓혀 왔다. 고은사진미술관은 그간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사진의 발전을 추동 할 수 있는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2013년부터 매년 한국 사진계의 40대 작가들의 성과를 점검하는 연례 전시 <중간보고서>를 기획하고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이 40대의 중진 작가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미래의 한국사진을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진과 중견 사이에서 전통과 진보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한국 사진계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40대 작가 스스로에게 지금이라는 시점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들은 선배들이 구축한 전통을 계승하면서 해체, 재구축해 다시 나가야 하는 중대한 시기와 마주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간보고서>는 작가들에게 직접 전시기획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뒤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기 검열을 통해 작업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2013년 박진영, 2014년 신은경에 이어 2015년 <중간 보고서>는 백승우가 참여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대표작 Establishing Shot(2012), Archive Project(2011), Utopia(2008) 등과 함께 Signboard 시리즈 신작과 작업 전반의 맥락을 보여주는 Art Edition 프로젝트 작업을 새롭게 선보인다. 백승우는 2006년 Real World를 시작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써 객관적 사진의 진수를 선보이며 한국 사진계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는 특히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대비 시키는 작업들을 통해 사진매체의 특성을 탐구하고, 사진예술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실재와 허구의 중첩된 경계에 대한 작업은 백승우의 지속적인 관심사이다. 대표작인 Utopia시리즈는 북한의 선전물 속 이미지를 왜곡한 작업이다. 선전물 속 건물은 실존하는 건물이지만 작가의 왜곡을 통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로 변모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실재와 허구의 경계에서 탄생한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디스토피아에 관한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또 한가지 백승우의 작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텍스트이다. 새롭게 선보이는 Signboard시리즈 신작은 작가의 기존 시리즈의 제목과 작가에 의해 의미가 재생산된 텍스트를 조형화한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관람객에게 개념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작품에 대해 감상과 해석의 여지를 오히려 차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텍스트와 이미지간의 충돌과 연계, 기록과 기억, 진실과 조작 등 의미의 재생산에 대한 고민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이번 전시는 사진매체의 특성인 객관성∙직접성∙보편성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프레임 안팎으로 감춰져 보여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주목하려는 백승우의 주제의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의미의 재생산 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될 백승우의 작품세계를 통해 사진예술의 의미를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진을 말하는 사진
디지털 사진이 일반화되고 각종 가상 이미지가 넘쳐나는 오늘날, 사진이 사실(fact)만을 기록한다거나 진실(reality)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진은 여전히 삶의 어떤 순간을 ‘기록’하고 기록된 시간을 떠올리는 ‘기억’의 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 모른다. 이러한 간극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 앞에 놓인 사진(오브제)을 자연스럽게 사실로서 인지하면서도, 이내 그 사진(이미지)의 진실성 여부를 의심해보거나 지레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에 있어서 이러한 오브제와 이미지, 실제와 가상 사이의 간극과 혼돈이야말로 오늘날 동시대 미술 안에서 사진이 지닌 우월한 이점이기도 하다. 백승우는 사진의 이러한 매체적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그러한 간극과 혼돈을 기본 어법 삼아 다채롭게 변주해온 한국 현대사진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다.
사진비평상으로 작가이력을 시작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흐름이 있어 왔다. 협소한 공간에서 실제인 듯 연극적인 상황을 연출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데뷔작 (2001)이 일관된 작업의 지향점을 알렸다. 그리고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연작이다. (2004-2006)은 한국의 한 테마파크 내 모형건물들을 실제 도시 풍경 안에서 함께 포착해냈고, (2006-2008)는 영국의 도심 속 거리 곳곳에 작은 모형군인들을 배열해 낯선 장면을 담아냈다. 두 연작 모두 실제처럼 만들어진 가상의 소재를 다시 사실적으로 사진에 담아내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고자 한 의도의 작업들이었다. 한편 작가의 이러한 일관된 관심사가 보다 적극적인 조작과 변형의 작업 형태로 변모하게 된 것은 필름의 ‘확대’를 통해 원래 사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추출해낸 (2005-2007)부터다. 이때부터 백승우는 촬영을 넘어선 작가의 ‘개입’ 과정에 주목하게 된다. 카메라의 기계적 속성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사진의 표현적 한계를 여러 다른 개입의 방식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양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최근작들이 주로 선보인다. (2008)가 그 시작점에 위치할 것이다. 연작은 전작인 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비현실적 공간으로서 북한의 이미지를 ‘촬영’이 아닌 ‘수집’을 통해 마련하고 그것들을 과감한 디지털 조작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시킨 작업이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일본이라는 제 3의 장소에서 구입한 북한의 선전물 이미지에서 작가가 임의로 건축물들을 변형하고 색을 빼거나 입혀 새롭게 구축해낸 이미지는 이미 탈각된 정치적 함의에 예술적 표현이 더해져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북한 스스로 이상적으로 보이고자 제작한 선전용 이미지가 다시금 왜곡되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보다 환상적인 ‘유토피아’로 변모한 것으로, 실제 북한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과 훨씬 더 큰 간극을 만들게 된다. 특히 연작 중 한 점의 이미지를 13개로 나누어 13개 국가에 보내 프린트한 는 데이터 상의 ‘이미지로서의 사진’과 실제 프린트로 물질화된 ‘오브제로서의 사진’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동일한 사진이 수용자에 따라 제각기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가 한 장의 원본 이미지를 변용한 것이라면 (2011)와 (2012)은 여러 장의 원본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으로 조합해 만든 사진들이다. 먼저 는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기존에 존재하는 발견된 사진들(founded photos) 중 여러 이미지를 단지 표면적 유사성만으로 선택해 디지털 상에서 다시 프레이밍하고 색을 빼고 입히는 등 재조합 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완성한 작업이다. 작가가 미국에 체류하며 구한 출처 모를 미국 공장의 재건축 장면 프린트와 한국 최초의 공장인 경성방직의 모습이 담긴 사진자료, 작가가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촬영한 매일유업 공장과 기무사 건물의 재건축 과정 사진 등이 를 위해 작가가 구축한 ‘아카이브’의 소스들이다. 허술하게 드러난 이미지들의 이음새나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색조 등 여러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성된 사진을 으레 기록사진으로 받아들인다. 혹시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다 해도 이미지의 출처나 촬영의 주체를 알 수 없기에 그 자체로 이미지를 감상하거나 나름대로 상상하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연작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는 사진이 지닌 리얼리즘의 본성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자, 그러한 사진의 리얼리즘이 오늘날 절대적인 조건이 될 수 없음은 물론 철저히 배반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은 와 마찬가지로 이미지의 재조합 방식으로 제작된 사진이나, 이미지의 소스들이 모두 작가가 직접 찍은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작가는 초고층 건물에서 부감으로 촬영한 서울, 부산, 동경, 오사카, 고베 등 도시의 이미지를 수십 장으로 분할한 뒤 재조합 하여 새로운 도시의 전경을 탄생시켰다. 도로, 건물, 교각 등 작가의 기준에 따라 프레이밍되어 이어 붙여진 이 대형사진은 외형적으로 흡사한 두 국가의 도시구조에 대한 암시이자 사진의 리얼리즘을 둘러싼 유희이기도 하다. 흑백 이미지가 언뜻 과거 자료사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미지들의 허술한 이음새가 기존 이미지의 합성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 어떤 작업보다 동시대의 현실을 충실히 기록한 사진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이상엽의 ‘웅변적(eloquent)’ 스타일. 한국사회의 주요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집요하게 추적해 온 작가가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취하는 스타일이다. 이는 오랫동안 포토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사용해 온 카메라 워크와도 관계가 있다. 작가는 사태의 맥락을 누락시키지 않기 위해 포토에세이 형식을 끌어들이기도 하며, 상황을 함축적으로 응축시켜낸 장면과 정황만을 묘사한 장면을 적절히 혼합함으로써 발언의 강약을 조절하기도 한다. 마치 말의 높낮이를 조절하거나 특정 단어를 억양을 통해 강조함으로써, 또는 말에 감정을 실어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극대화시키는 웅변가의 호소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스타일은 메시지를 짧고 강렬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 유효하다.
끝으로, (2011)는 작가의 일련의 작업 중 ‘촬영’이라는 사진의 전통적 문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진이자, 사진의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의 의미작용이 가장 심하게 변용된 사진이기도 하다. 이 사진들은 작가가 미국의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5만 여 장의 슬라이드 사진 중 2700장을 추리고 다시 8명의 사람들에게 각자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8장의 이미지를 선택해 제목과 날짜를 기입하게 하여 총 64장의 사진으로 완성한 프로젝트 성향의 작업이다. 분명 누군가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기록했을 ‘사적인’ 사진들이 주인의 손을 떠나 결국 한국의 한 사진작가의 아카이브 소스로 들어오게 되고, 또 여러 사람들의 시각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가 입혀져 전시장에 걸릴 ‘공적인’ 사진이 되기까지 그 지난한 과정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기록과 기억은 휘발했고, 진실은 허구가 되었으며, 기의를 상실한 채 배회하던 이미지의 기표는 새로운 기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를 비롯한 백승우의 사진들은 계속해서 사진이 지닌 의미작용의 미끄러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사진 매체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깨달을 뿐 아니라, 거듭되는 인지적 어긋남과 매끈한 이미지 그 자체를 즐기게 된다. 사진의 매체적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그 본성의 외연과 함의를 확장해나가는 것, 그 가운데 기지(機智)와 완성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백승우가 현대미술 장 안에서 사진을 해나가는 방법인 셈이다.
미술비평 신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