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또는 필연

전시

우연 또는 필연

작가
강운구
전시 기간
2025/09/11 - 2026/01/09

첫 전시회 이후 31년 만에 복원된 강운구 사진의 원점.

여전히 진지하고 서늘한 이 사진들은,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사진가 강운구의 초기작이자 첫 개인전인 《우연 또는 필연》을 31년 만에 다시금 선보인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업은 1994년 사진집과 전시로 처음 공개된 이후, 새로운 감회로 우리 곁을 찾아온다. 전시에는 1990년대 초 인화된 11x14 젤라틴 실버 프린트와 20x24 크기로 확대된 디지털 프린트 총 133점이 소개된다.

강운구는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밥이라 말하며, 사진 매체의 본질인 기록성을 주요한 가치로 지켜왔다. 이른바밥 사진론이다. 기술이 발전하며 암실은 점차 사라지고 디지털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그는 카메라의 원리를 이어받은 디지털 도구 역시 자연스레 다룬다. 이번 재출간 사진집 『우연 또는 필연』의 톤을 라이트룸으로 다시 조정하거나, 지난 전시 《네모 그림자》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선보인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도구는 변해도 기록성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과거와 현재의 대립점이 아니라 포괄점이다. 그는 여든 중반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애정과 태도로 사진을 대하고 있다.

〈우연 또는 필연〉은 앤솔로지 개념으로 여러 시리즈의 작업이 한데 모아진 것이다. 그 안에는 새마을운동으로 철거되기 전의 황골, 용대리, 수분리 마을의 농촌 풍경을 담은 〈마을 삼부작〉도 포함된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1960년대 말부터 진행된 국내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간과된 현실이며, 대상은 같은 시대의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농촌과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땅과 시대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은 서정적 리얼리즘으로 설명된다. 기록의 진실성에 충실하면서도 당대 현실과 사람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애정과 관심, 비판적 태도가 여실히 묻어난다. 〈우연 또는 필연〉이 사라진 한 때에 대한 단편적 증거라면, 이 전시는 사진가가 처음을 향해 돌아보는 장편적 시간의 함축일 것이다.

전시명은 강운구의 작업론을 설명한다. 누구에게나 우연의 순간은 찾아오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필연으로 포착된다. ‘우연이란 것도 필연이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표현은 단순히 시리즈 제목이 아니라, 사진가가 세상을 보고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전시는 총 12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섹션의 각 사진은 촬영 장소와 연도가 서로 다르다. 그가 제안하는 시각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지 사이의 느슨한 여백에서 오히려 자유로운 사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이 출간된다. 31년 만에 새롭게 디자인된 이번 사진집은 국내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디렉션을 맡았다. 사진집은 고은사진미술관 홈페이지와 현장에서 구매 가능하다. 또한 미술관 로비에서는 강운구의 역대 사진집과 주요 도서의 대부분을 열람할 수 있어 그의 정직하고 꾸준한 작업 세계를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강운구 1960년대 이후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한국 사회의 국면을 끊임없이 기록해 왔다. ‘우리라고 부르는 한국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외국 사진 이론의 잣대를 걷어내고자 했다. 그렇게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이라 불리는 고유의 시각언어를 남기며 국내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하였다. 1941년에 태어난 강운구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개인 전람회로는 《암각화 또는 사진》(2023, 뮤지엄한미 삼청), 《사람의 그때》(2021, 고은사진미술관), 《네모 그림자》(2017, 뮤지엄한미 방이), 《흑백판 경주남산》(2016, 류가헌), 《오래된 풍경》(2011, 고은사진미술관), 《저녁에》(2008, 뮤지엄한미 방이), 《마을 삼부작》(2001, 금호미술관), 《모든 앙금》(1997, 학고재), 《우연 또는 필연》(1994, 학고재)을 개최하였다.

사진집으로는 『암각화 또는 사진』(가현문화재단, 2023), 『사람의 그때』(고은사진미술관, 2021), 『네모 그림자』(가현문화재단, 2017), 『흑백판 경주남산』(열화당, 2016), 『오래된 풍경』(열화당, 2011), 『저녁에』(열화당, 2008), 『강운구』(열화당, 2004), 『마을 삼부작』(열화당, 2001), 『모든 앙금』(학고재, 1998), 『경주남산』(열화당, 1987), 『내설악 너와집』(광장, 1978)   등이 있으며, 사진이 함께한 산문집으로 『자연기행』(까치글방, 2008), 『시간의 빛』(문학동네, 2004), 저서 『강운구 사진론』(열화당, 2010), 공저 『한국 악기』(열화당, 2001), 『능으로 가는 길』(창비, 2000),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글방, 199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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