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을 사수하라”- 강용석의 부산 탐방사진
1.
사진가 강용석은 지난 한 해 동안 부산의 오래된 시가지를 탐사했다. 그의 앞을 스쳐 지나던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때로 부산하게 때로 한가하게 화면을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궁금하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조금 어색하다. 익숙한 시선이 아니라 참신한 긴장이 감돌기 때문이다. 세로 화면에 독특한 긴장이다. 이 사진들은 텔레비전과 영화와 컴퓨터 화상 등 거의 옆으로 길쭉한 화면에 길들여진 눈을 자극한다. 눈을 비비고 화면을 들여다보아도 북적대는 거대 항도와 관광지의 모습은 뜸하다. 그 동안 많은 사진을 통해 알려진 부산의 모습이 아니다.
예컨대, 다른 많은 사람이 촬영한 수려한 부산의 이미지는 사방에 널렸다. 고속철도가 미끄러져 들어가고 컨테이너가 만리장성처럼 쌓이고 연락선이 껄떡댄다. 위풍당당한 항공모함이 정박하고 늘씬한 러시아 촌색시들과 국적을 알 수 없는 근육질 선원들이 골목을 누빈다. 막강한 선진국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벌이고 해운대와 오륙도 위로 해와 달이 그림처럼 뜨고 진다. 활기 넘치는 자갈치 시장과 만화경 같은 남포동, 차이나타운과 용두산 공원과 영도다리, 세계의 미남미녀가 몰려오는 영화제, 물살을 가로지르며 드나드는 크고 작은 어선들, 산더미처럼 쌓인 꼼장어가 익어가는 불판에 둘러앉아 환담하는 사람들. 백사장과 연안의 휘황한 호텔들, 양주로 넘치는 바와 카페, 이 모든 모습, 흔히 사진들이 보여주는 야단법석으로, 보기만 해도 찾아가보고 싶게 만드는 관광 부산의 번지르르한 이미지는 끝도 없다.
이런 이미지는 이 사진 속에 없다. 그 대신 이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누구나 그렇듯 항상 돌아가는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와요 부산항”을 찾아 감격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별수 없이, 그냥 평범한 생활로, 일상으로 되돌아간 부산이다. 국민가수 조용필이 노래하는 부산이 아니다. ‘독립사진가’ 강용석의 발길을 따라가 보는 부산이다. 강용석은 마치 동명이인 변호사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잡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무성영화 같은 흑백사진의 무대를 세웠다. 강용석은 그 무대 앞에 나와 “부산에서 단 한번이라도 이런 모습을 봅시다...” 라고 인사하며 커튼을 젖힌다... 그렇게 부산의 오래된 도심 구석구석이 수평에서 90도 회전된 수직화면 속에 펼쳐진다. 우리는 필름카메라만 달랑 들고 시가전에 뛰어든 외로운 저격수처럼 사진가가 잡아온 노획물을 구경한다.
그는 촬영한 필름을 직접 현상했다. 그 사진들은 조금 눈부셔 보인다. 엷은 흑백계조 때문이다. 요즘에 이렇게 작업하는 사진가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사진에서도 장인의 솜씨로만 빚어낼 수 있는 그윽한 매력이 크게 줄었다. 컴퓨터로 다듬어 거의 엇비슷해진 이미지에서 맛보기 어려운 매력이다. 장인의 솜씨라고 하면, 세련은 기본이지만 엄격함이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다.
그 화면 속의 세계는 언뜻 보기에, 일조량이 많아 따사롭고 행복한 곳 같다. 그러나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차츰 건조한 기운이 느껴진다. 풍랑이 거세고,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항도라면 당연히 촉촉하게 젖은 음산하거나 낭만적인 거리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예상은 거침없이 깨진다. 그 밝은 계조는 곱다기보다 무섭다. 희뿌연 눈부심이라 무섭다. 마치 강력한 폭탄이 터질 때 번쩍이는 섬광에 비친 듯하다. 창백한 백색의 공포는 어둠의 공포보다 무시무시하다. 유령처럼 오싹하고 마약처럼 환각적인 색조 아닌가. 배척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의 색채, “백색 테러”의 무서움이다. 그 섬광 아래 숨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구석을 샅샅이 밝히기 때문이다. 과거에 강용석은 매향리 백사장에서 포탄 곁을 배회했다. 그래서 이런 예감을 뿌리치기 어렵다.
보통, 사진가는 촬영 전후에 상상에 취한다. 눈앞의 것을 화면 속에 그려보면서 파인더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은 멈춘다. 잠깐 눈이 먼다. 사진가만이 맛보는 맹목의 황홀함이다. 사진가는 그토록 짧은 황홀, 덧없고 말짱한 도취를 위해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렇게 숨죽였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사진가는 필름에 담긴 것이 어떤 이미지로 되살아날지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사진으로 그 장면, 그 시간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2.
어떤 도시의 명승고적은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되레 평범한 추억이나 남긴다. 어느 도시에나 옛것과 새것을 내세우는 ‘랜드마크’가 있지만 막연한 연상이나 부추긴다. 해운대, 오륙도, 영도다리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렸다. 그렇지만 이런 랜드마크를 늘어놓는 사진들이 ‘부산’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부산은 패장을 숭모하는 도시다. 임진왜란 때 처음 왜적과 맞붙어 장렬하게 전사한 흑의장군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을 기린다. 초전부터 “나라를 사수”한 영웅이다. 저항에 부딪힌 왜장들도 감탄하고 존경했다. 그들은 두 영웅의 타협을 모르는 단호한 의기에 움찔하면서 조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충무공의 연승보다 더욱 값진 패전이었다. 영웅과 함께 순절한 여자들도 탐미적 일본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일본병사들은 전쟁이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에 은근히 기가 꺾였다.
그로부터 수백 년 뒤, 6.25전쟁이 터지자 부산항은 임시정부 수도로서 종군기자들이 그 면면을 전 세계로 타전해 유명했다. 이렇게 부산은 한반도에서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었다. 물론 인천공항이라는 천창이 뚫렸지만, 부산의 역사성과 국제성을 누가 감히 의심할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내습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도 세계사의 중요한 고비를 넘긴 현장이다. 부산은 평온하던 시대에도 많은 이방인이 탐내고 드나들며 주저앉곤 했다. 참담하던 일제 식민치하에도 일본에 주재하는 많은 서양 사람이 틈만 나면 부산으로 건너오기 좋아했다. 유럽에서 대륙횡단 열차편으로 부산항에 내려 일본으로 건너가는 길에 부산에 머물던 사람들도 꽤 많다. 6.25전쟁 때는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였다. 그곳에서 프랑스 종군기자 세르주 브롱베르제는 이렇게 전했다.
“말끔한 군복과 군화를 착용하고 도착한 미군병사들은 미국을 출발한지 채 열흘도 안 되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온 탓에 약간 어리둥절한데다 부산을 거지반 차지하는 시장의 이국적 동양 분위기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내리쬐는 햇살과 가파른 해안은 리비에라 해안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바다는 청옥빛 보다 엷다. 옥빛이다. 도시는 한국의 다른 도시들과 똑같아 보인다. 칙칙하고 사람들이 붐비며, 악취를 풍기는 개천들이 흐른다. [...]
부산은 부두를 길게 따라 현대식 건물들이 몇 채 서 있고, 흰 타일의 큰 건물 한 채와, 솔직히 말해, 다른 곳과 거의 구별하기 어려운 케케묵은 동네가 있다. 시내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일본의 식민지와 영국의 대형 상회들과 영광스럽지만 멀어진 조선왕조를 연상시킨다.
꽤 비좁은 항구에서, 미국의 거대한 기선들이 낡아, 덜컹거리는 기계들에서 시커먼 연기를 꾸역꾸역 뿜는 한국의 작은 배들 사이로 조심스레 길을 터나간다. [...]“
- 세르주 브롱베르제, 『한국에서 돌아와』
“다른 곳과 거의 구별하기 어려운 케케묵은 동네”도 분명 지난 몇 십 년간 꽤 달라졌다. 전체 골격과 윤곽보다 외양이 달라졌다. 골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비탈길과 골목, 동네는 여전하다. 주민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피난민이 된 수많은 동포가 정착했던 곳이다. 노숙자는 “2백만”에 달했다고 한다. 태초의 대홍수 때나 바벨탑이 무너진 뒤의 혼란이 무색할 만큼, 어마어마한 혼란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부산은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의 숨은 고통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이런 이면의 얼굴들을 고(故) 사진가 최민식은 평생 동안 박애주의자의 시선으로 포착했다.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그가 보여준 부산과 시민의 얼굴이 너무 인상 깊어 거의 전형으로 굳어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엄청난 혼돈에서 허우적대던 부산은, 60여 년이 더 흐른 지금, “최후의 보루”로서 입었던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었을까? 그 증상의 원인과 정체를 여전히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상처는 임시 봉합된 채, 건드릴 수 없는 타부가 되었다.
이 사진들은 최후의 보루를 임시로 꿰맨 실밥을, 아물지 않은 틈에 삐져나온 것들을 풀어내는 듯하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실밥들이 한 올씩 터진 셈 아닐까? 통일이 오지 않는 한 절대 아물지 못할 고름주머니에서 조금씩 진물이 흘러나오지 않던가?
부산 특유의 환경과 썩 잘 어울리던 건물과 도시는 사라졌다. 새롭게 건설된 도로와 교량과 랜드마크는 유럽, 아라비아 반도에서든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어디서든 판에 박힌 스타일과 같다. 항구와 부두도 5대양 연안, 북해연안 그 어디에서나 기본적으로 똑같다. 큰 항도는 완전한 인공지대가 되었다. 판에 박힌 산업재로 덮인 인위적 공간이 압도한다. 거대한 방파제와 등대와 보세창고가 서 있다. 현수교가 길게 수평선 뒤로 사라지며, 몇 개의 암초와 섬, 요트와 유조선이 떠있다. 트럭과 짐수레차량이 분주하게 오간다. 사람들 옷차림마저 비슷하다. 말을 걸지 않는다면 어느 곳인지 헷갈리지 않을까?
항도마다 다른 점이 없지는 않다. 여기 사진 속에 뚫린 골목을 가로막는 펼침막에 “웰컴 유에스 네이비”라는 알파벳이 선명하다. 차이나타운도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이 드나드는 골목도 이방인을 환영한다. 중국인과 일본인도 반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도 철천지원수처럼 소원하던 이방인들이 나란히 쇼핑을 즐긴다. 부산은 외국인과 거래하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적 시장의 분위기를 간직했다. 왜나라 사람들은 두 차례 침략으로 치 떨리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부산 사람들은 동포의 피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들에게 다시 항구 곁에 들어와 거래하도록 할 만큼 너그러웠다.
3.
이렇게 파란만장한 사연이 중첩된 부산에서 강용석은 쾌청한 날마다 활보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마주치는 행인들을 담았다. 다리, 교각, 분수, 화단, 가로수와 가로등, 표지판, 신호등, 간판 등 도시의 필수품이지만 군더더기처럼 번잡해진 것들이 자연스레 그 배경에 자리 잡았다. 어느 장면에서나 배경에 우상이 보인다. 낡은 건물 공터에는 비석이 잡초로 우거진 묘를 지킨다. 현대조각도 광장에서 빠지지 않는다. 차량마다, 또는 지붕 사이로 그리스도상과 불상, 구국의 위인상, 태극기, 경찰과 광고모델이 보인다. 스님의 미소가 나부끼는 ‘배너’에 직업모델 처녀의 미소가 겹친다. 태극기도 나부낀다. 단조로운 건물로 첩첩이 쌓인 틈바구니에서 많은 우상이 우리를 반색한다. 그는 이런 우상 앞을 지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사실 진짜 시민들이다. 그의 곁을 스치며 실루엣을 남긴 사람들이야말로 흔히들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보통사람이다. 또 “유명인사나 연예인”과 다른 인간이라며 엉뚱하게 “일반인” 소리를 듣는 시민이다.
여러 집단도 등장한다.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사진가는 그들이 흩어지기 전에 셔터를 눌렀다. 그들의 감격에 겨운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 왜 감격하는지 구체적인 사연을 알 수는 없다. 어쨌든 함께 모여 감흥에 젖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아직 해체되지 않았다. 언제든 때가 되면 뜻을 모아 울고불고 할 사람들이다.
길모퉁이나 비탈길이나 대로변 어디서든 인물은 비스듬히 잡혔다. 인물들은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건너뛰듯 이어진다. 사진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바라보았다. 빠른 피사체에 대응하려는 작가의 자연스런 몸짓이었든 아니든 아무튼, 인물들은 익명의 주인공처럼 행렬을 이어간다. 대단한 반어법이다.
사진가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의구심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뭐 이런 곳이 다 있을까? 도심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작가도 관객도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의혹에 넘치는 광경 아니었을까?
강용석은 고즈넉한 풍광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기존의 틀에 인공구조를 덧붙인 살풍경 속으로 뛰어들었다. 낭만 여행도 아니지만 매 순간 위기에 처하는 모험을 한 것도 아니다. 눈을 부릅뜨고 도시경관을 즐기려고 해서가 아니다. 그의 눈은 풍경화가가 관찰하는 눈과 다르다. 잠시 한눈 팔 틈 없이 부단히 움직이는 감시카메라처럼 기민한 산책자의 눈이다. 한가하게 걷는 척해야 했겠지만 그러면서도 잠복근무하는 비밀요원처럼 눈을 번뜩여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숨어서 잠복할 수도 없지 않았나. 자신의 위치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행인을 겨누어야 한다. 그렇게 그는 걸으면서도 기다렸다. 2인1조로 순찰하는 무장경찰처럼 곁에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서 무방비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행인을 낚아채려고, 불심검문하는 사람처럼 그 정체를 궁금해 하지만 방해하지 않으면서 눈으로만 훑어야 한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행보였다.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왕년의 용사도, 등산객도, 개구쟁이도, 아낙네도 그의 조용한 검문을 통과했다. 그들 모두 무사했을까? 사진가는 그들의 그림자를 우리에게 넘겼다. 어쨌든,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조차 선선히 응하기라도 한 듯 사진가의 작업에 동참했다. 외면하려 했던 사람들은 사진가를 경계만 했을까? 자신감이 없어서일까? 수치심 때문일까? 혹시 이미지의 무상함을 잘 알고 있었을까? 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내면만 믿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얼굴과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에서 내면이 소외되는 것에 반발하는 가장 인간적인 위신을 지키려 했을까?
강용석은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절망한 듯, 죽은 듯이 길가와 벤치에 누어있는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였다. 그런데 사실, 구걸하는 사람은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비굴해 보여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걸인이 우글대는 도시일수록 사는 맛이 나는 곳임을 입증한 기행문은 많다. 걸인이 없는 도시라고? 그런 도시는 사실 거지가 될 권리조차 없는 냉엄한 사회였다. 죽을망정 거지가 되는 치욕을 견딜 수 없게 하는 비정한 사회였다. 사진가의 발걸음을 붙잡은 사람들, 그렇게 길바닥에 주저앉거나 엎어진 사람들은 어찌된 일일까? 막막하기 그지없어도 손을 내미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까?
사진가는 이런 검문검색과 또 조서 같은 인물 이미지와 배경을 하나로 치밀하게 묶은 계조효과로서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그 기이한 눈부심에 눈을 가리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충격적이거나 민망한 이미지도, 도발적인 이미지도 아니라 덧없는 일상의 리듬을 툭툭 잘라낸 그 자취에서?
강용석은 UN군 묘소, 6.25참전 기념관을 비롯해 부산역 광장과 또 곳곳의 길목도 지켰다. 공원 방문객들은 벽화와 부조,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즐긴다. 방문객들은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기념조형물을 순진하게 되살아난 역사로 믿어주는 듯하다. 누구나 비극을 함께 겪은 동포와 후손으로서 애국애족의 상징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단 한 번뿐인 행위예술, “퍼포먼스”가 사진만 남기는 것처럼, 사진이 없다면 공허한 사건이 될 뻔한 행동이다. 사람들은 사진으로 애국심을 인증한다. 기념물의 모양새는 중요하지 않다. 가족과 시민으로서 옛날의 사건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큰 뜻의 상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루만지고 소중해한다.
요즘 기념사진은 진부하거나 엄숙하지 않다. 청소년들은 익살스런 손짓으로 포즈를 취한다. 소풍의 즐거움이다. 단체사진 앞에서 무조건 굳어버리던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세대는 시대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보여준다.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골이 깊다지만, 비극도 어느새 주름살과 얼굴을 편다.
4.
아무튼, 강용석은 대체로 대중에게 익숙하고 사진가들 다수가 따르는 큰 흐름을 멀리했다. 즉 사진으로 ‘예술’을 하려는 경향이다. 사진가보다 예술가 되기를 원하는 경향이다. 이런 사진가들은 피사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다. 그와 같은 사진은 몽상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사실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진가의 내면에서 꿈틀대던 이미지를 가리킨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려고 사진가가 창작한 것이다. 우리는 사진가의 내면에서 빚어낸 이런 이미지에 공감할 수도 있지만, 그 이미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라 당황하기도 한다. 관객은 사진가의 취미와 안목과 정서가 통하는 사람이나 공감할 수 있는 알쏭달쏭한 이미지와 마주친다. 이런 예술사진에서 사진가는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렇군요. 자유롭게 표현하셨군요. 그렇다면 내게도 자유가 있으니, 나도 내 멋대로 해석해도 좋겠지요?”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는 화면 앞에서 작가와 관객은 서로 자유만 누리려 할 뿐 얼싸안을 일은 없다. 이미지의 뜻을 두고 각자의 해석만 난무한다. 그 동안, 표현된 이미지 혼자 썰렁하게 벽에 걸려 있다.
이런 사진은 미술이나 컴퓨터그래픽 등 다른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예술작품’의 일반적 분위기를 띤다. 그 대신 사진 고유의 잠재력은 크게 위축된다. 그 수사학도 약해진다. 사진이라는 수단이 굳이 필요했을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이런 사진은 사진가가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이미지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만큼 깊이가 없어진다. 이미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깊이는 어디 있을까? 오직 깊은 속에 들어있는 것 아닌가?
객관적 사실을 촬영한 사진도 -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진처럼 - 현실의 거죽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사진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이런 사진이 되레 깊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 어느 곳의 풍경을 볼 때처럼 그 겉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 무엇인가 숨어있을 깊이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아직 드러나지도 않고 드러날 수도 없어 깊은 곳에 있는 것을 궁금해 한다. 속에서 겉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겉만 보여주니까 속이 있다고 전제한다. 우리는 이런 사진 이미지에서 그 이면이나 속을 들여다보려는 충동을 느낀다. 인화지 위에 드러난 것만 있다고 절대 믿지 않는다. 외면 앞에서 당연히 내면을 궁금해 한다.
인물이든 사물이든 사진가의 카메라 앞에 있던 모든 것은 비록 있는 그대로인 척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것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 깊이를 헤아릴 여지를 준다. 어쩌면 관객은 자유로운 해석보다 사실에 얽매이는 구속을 좋아한다. 관객은 스스로 포박한 채 사진가에게 끌려가면서 현실을 뒤돌아본다. 사진은 멀어진 현실, 지나간 과거의 모습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관객은 사진에서 겉모습이나마 알아볼 수 있어 그 속을 들출 수 있겠다는 의욕을 품는다. 이미 드러난 속이라면 더는 궁금해 할 것이 없다. 공감하거나 말거나, 취향에 따른 판단만 남는다. 사진이 보여주는 사실의 이미지가 가리키는 때와 장소, 그 역사와 현실을 생각할 여지는 없다.
개인의 감각을 충실히 따르면서, 사진이 가리키는 것보다, 사진 이미지 자체의 매력을 추구하는 사진가는 이미지의 동굴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감각과 정념, 감정과 욕망이 복잡하게 얽힌 몽상의 세계다.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은 어렴풋한 몽상에 취해 길을 잃는다. 반대로 사진 이미지 자체보다 사진으로 재현된 어떤 것을 접하는 관객은 그 어떤 것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또 그렇게 사진가가 서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곧장 뻗은 길을 따라간다.
5.
건축가와 도시 건설자는 도시를 늘 인간이 세울 수 있는 이상향으로 삼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도시 기반시설이 인공건자재로 덮이면서 초목은 체면치레나 장식으로 곁들인다. “잘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분주하게 산업항을 키우고 알뜰하게 신도시를 지었다. 그런데 효율성의 추구가 거꾸로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을 앞당겼다. 부자연스러워 그렇다. 우리는 자연에서, 낙원에서 추방당하기는커녕 점점 더 낙원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하기 좋아한다. 작은 시장과 감칠맛 나는 솜씨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던 많은 가게들은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편안해하는 구불구불 자연스럽던 형태는 뻣뻣하고 거칠게 변했다. 인공도시가 아무리 멋지더라도, 그것을 지켜주는 것은 물을 머금은 나무와 풀뿌리들이다. 또 시민들이다. 많은 사람이 일손을 놓은 도시는 단 며칠 만에 악취를 풍긴다.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청소부가 파업하는 도시는 하루 만에 쓰레기통이 된다.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세운 ‘유토피아’도 단 몇 시간 만에 ‘카오스’로 무너진다.
여러 신화에서 하늘의 심판은 대도시에 떨어진다. 농촌이나 야산에 떨어져 거목을 쓰러뜨려도 거목은 쓸모 있는 목재라도 된다. 그러나 대도시는 무너지면 재만 남는다. 하느님과 선지자들은 대도시를 사악한 소굴로 주시했다. 어리석은 인간도 짐승과 똑같이 모여 살 수밖에 없지만 너무 많이 모이면 악이 번창한다고 경고했다.
가능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무사히” 모여 살고 게다가 한마음, 한뜻으로 마치 신앙공동체처럼 똑같은 믿음으로 더 큰 몸집을 키우며 한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이상도시는 없다. 작은 마을이나 부락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도심의 작은 동네마다 가끔 이상향의 추억이 남아 있다. 하지만, 거대하게 부푼 도시들은 금이 가기 쉽고 쪽이 떨어져나가며 가렵고 곪은 곳을 자주 긁어대는 만성질환을 앓는다. 강용석은 이런 금이 간 틈새에 렌즈를 들이대었다. 그는 중첩된 역사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갱생하려는 도시의 자취를 쫓아다녔다. ‘로드 무비’ 대신 ‘로드 다이어리’를 남겼다. 그의 이런 1년 치 ‘부산 일기’는 여러 면에서 민담을 닮았다. 보통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민담은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각 개인의 내면에 간직해 왔다. 그의 부산 일기는 오직 “눈에서 눈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민담이나 다름없다. 민담은 공식역사에서 누락되곤 하지만 줄기차게 샘솟는 역사의 자원이다. ‘부산 일기’라는 한 편의 민담은 질펀한 풍자와 덕담으로 넘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러니와 반어법, 재담으로 넘치는 이야기다. 머리가 차가운 사람이 즐기던 설화다. “스토리텔링”으로 짜여진 구성을 따르지 않은 설화다.
무대에서 막이 내려오고 공연이 끝나면 작가든 관객이든 몹시 허탈해한다. 각본대로 잘 되었든 아니든 공허해한다. 그러나 이렇게 공연이 끝난 바로 그 자리야말로 사진이 시작되는 자리가 된다. 뒤풀이 자리가 곧 사진의 자리다. 허구적 놀이를 마치고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야말로 사진이 의미를 발하는 시간이다. 사진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아니다. 사진은 “각본 없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항상 또다시 무대에 올린다. 모두가 허탈해하며 떠나버린 자리, 잔치가 끝난 자리야말로 사진의 자리다.
누군가 두서없이, 어눌하게 하는 말이 각본에 따르는 법은 없다. 언뜻 짜임새 없어 보이는 토막 난 이 사진들은 각본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현실을 따랐다. 현실은 단 한 순간도 예견이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살아 움직일 뿐이다.”
사진은 때때로 사진가가 개성을 억누르고 거의 무심해질 때 더욱 개성적인 이미지를 낳는다. 우리가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로서, 군집 생활하는 종족으로서 본능적으로 눈을 뜨는 순간이다. 이럴 때 그 순진한 눈에서 오래 갈고 닦은 지성과 감성이 번뜩인다. 우리에게 억눌려있던 야성미를 발산한다. 매혹적인 역설이다.
강용석의 부산 일기는 시각정보로 넘치는 우리 시대의 자료 가운데에서도 매우 흥미롭고 보기 드문 것이 될 만하다. 그는 독립사진가로서 부산을 사수하자고 거창한 기념비적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았다. 우리 곁에서 가까이 스쳐 지나가는 시각증거를 수집했다. 존재를 과시하며 지나가는 것들이 아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공공기관 사진, 예술가 사진, 심지어 기록사진에도 등재되지 않던 시각이다.
6.
그렇다면 그는 이런 눈으로 어떤 부산을 지켜보려 했을까?
홍콩, 봄베이, 알렉산드리아, 안트베르펜, 르 아브르 등, 항구는 처녀의 가슴만 뛰게 할까? 사내들의 포부도 부풀리지 않았나? 중요한 항도는 오래되었으면서 항상 새롭게 깨어나곤 했다. 넉넉한 개방성과 포용력 덕분이다. 밖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 뜨겁고 관용은 푸근했다. 그곳 주민들은 종종 세련된 문화를 꽃피웠다.
자기 것과 다른 것을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 팔을 넓게 펴야겠지만 우선 가슴부터 더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부산은 과거의 기억으로 우리를 감싸 안고 우리를 지키려고 한다. 그렇지만 현해탄의 험한 물살 너머로 미래를 바라보게도 한다. 지금 강용석이 올라갔던 그 언덕이 남루하고 지치고 무기력하게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있더라도...
프랑스 북해연안 최대 무역항 르 아브르에 앙드레 말로 미술관이 있다. 인상주의 미술 컬렉션이 최상급이다. 이 미술관에 현대미술의 신호탄이 된 그림, 클로드 모네의 <인상>이 걸려있다. 물안개 사이로 뿌옇고 푸르게 출렁대는 물결 뒤로 항도의 실루엣이 함께 넘실댄다. 그 뒤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며 파도를 차츰 물들인다. 바로 그 너머로 멀리멀리 시선을 뻗으면 그 끝에 부산 앞바다가 떠오를 것이다. 두 항도는 해저 광케이블로 연결될 것이고.
어떤 것으로 잇든 서구 사람들은 항상 “빛은 동쪽에서 온다”고 철썩 같이 믿었다. 고대와 중세의 예술가들부터 현대의 예술가까지 모두 빛이 떠오르는 곳에서 아름다움도 새로워진다고 믿었다. 예루살렘만이 아니다. 카스피해, 인도양, 중국해를 넘어 동해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쪽이다! 그렇다면 우리 눈앞에 뿌옇게 퍼진 빛 속에서 떠오른 여기 부산의 이미지 너머로 우리에게 무엇이 보일까? 사진가가 연금술사처럼 빚어낸 엷은 광채에서... 그 속에서, 불길한 징후를 보아야 할까? 그 속에서 무슨 소리가 울리고 있을까? 이 사진들이 먼 훗날 다음과 같은 탄식의 증거가 되기를 누가 바랄까...
“바로 이곳, 바로 여기가 그 옛날 휘황찬란한 도시였다. 막강한 나라의 터전이었다. 지금 이렇게 버려졌지만, 옛날에 활기 넘치던 곳이었다. 외따로 떨어진 이 길로 활달한 군중이 돌아다녔다. 죽은 듯 소리 없는 이 벽 안쪽에서, 축제와 경쾌한 함성과 공연으로 끊임없이 소란스러웠으리라. 무너진 회랑들은 공공장소의 터다. 바로 이곳에서 기발한 환락이 모든 분위기를 달구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막강하던 도시에 무엇이 남았나. 을씨년스런 몰골이다! 방대한 지배 끝에 남은 것은 어둡고 공허한 기억이다! 이 주랑 밑에서 요란하게 겨루던 처절한 고독만 남겼다. 웅성거리던 넓은 광장에는 말없는 묘지만 남았다. 화려하던 장터는 흉측하고 남루하다. 왕들의 궁전은 야수들의 길목이 되었다. 짐승들은 신전 앞에서 풀을 뜯는다. 징그러운 파충류들이 성전에 살고 있다... 영광은 얼마나 이지러졌나... 그토록 많은 일이 어떻게 이렇게 허사가 되었을까! 인간의 작품이 이렇게 괴멸되다니! 이렇게 민족과 나라가 물거품이 되다니!”
- 콩트 드 볼네, 『유적』
정진국(미술평론가)
도시를 떠도는 전쟁의 기억, 강용석의 부산 사진
이 글은 사진을 다 보고 난 후에 따로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독자가 사진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 위해 개별 이미지[1]로 다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용석의 ‘부산을 사수하라’ 연작에 대해 내 주관적인 느낌과 해석을 적어둔 것이므로, 사진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는 아니다. 사진과 이 글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읽어야, 이 사진들이 지닌 풍부한 가치와 재미를 훼손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글보다 이미지가 더 중의적, 다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평가의 글이 사진가의 이미지에 붙을 때, 관객은 이미지와 글 사이를 왕복하면서 다소 냉정하게 그 둘의 거리를 보아야 한다.
두 개의 평행하는 여행
강용석은 부산에 잠시 머무는 여행객이며, 여기 담긴 사진들은 다양한 방향에서 시작해 한 곳(전시장, 사진집)에 모인 다음 다시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질 것이다. 사전에 인위적으로 결정된 어떤 방법론에 의해 분석 종합되는 부산 대신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붙잡기 어려운 현상들이 부산을 순간적으로 세웠다 허물었다 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을 명시하듯이 강용석의 부산 앨범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부산역으로 가는 한 그룹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이 사진은 연작의 제일 앞에 놓임으로써, 부산 출신도 아니고 부산에 사는 사람도 아닌 사진가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이 연작의 성격을 암시한다(25). 이 부산역 사진은 도로 위의 관광버스를 찍은 사진으로 바로 이어진다(26). 이런 순서로 작가는 이 사진집과 전시의 ‘편집방향’을 처음부터 제시한다. 전시는 하나의 여행담이며, 도입부분은 여행의 내러티브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어떤 여행일까?
사진들은 소위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전통을 따르면서 다소 랜덤한 구성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이 연작에서 어떤 방법론을 전혀 배제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부산을 한국전쟁과 결부시켜 보고자 했다고 한다. 이는 매우 의도가 분명한 것이어서, 관객은 이 연작 사진을 한국전쟁과 결부시켜 상상하고 읽어나갈 때 작가의 의도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첫 번째 챕터의 마지막 사진으로 출구(빛)를 향해 뛰어가는, 두 남녀의 다소 몽환적인 뒷모습을 선택한 것도 폭격, 피난, 경보 등 전쟁을 연상시키려는 작가의 뚜렷한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71).
전쟁과 부산을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성격을 갖는다. 첫째는 부산이 한국전쟁 당시 전투를 직접 치르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둘째로는, 첫 번째 이유 때문에 사건으로서의 한국전쟁은 휴전선의 반대쪽 끝에 있는 부산에서 그 직접적인 흔적을 찾기 어려울 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부산과 전쟁을 연결하는 것은 언뜻 보아서는 모순적이며, 휴전선 부근, 또는 군부대가 있는 평택이나 오산도 아니고 왜 부산일까 하는 질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작가는 매향리, 선전마을, 전쟁기념비 등 실제 한국전쟁과 직접 관련이 있거나 그 흔적을 다루는 작품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렇게 보면 강용석이 부산을 전쟁과 연결해 다룬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또 같은 이유에서 작가가 부산에서 전쟁을 다룬다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명백하게 전쟁과 분단의 흔적을 다룬 사진과는 어떻게든 다를 테니까 말이다.
이러한 모순의 구조가 잘 나타나 있는 사진 중에 하나가 관광버스를 찍은 사진이다(26). 버스에는 ‘우리’와 ‘강산’ 사이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다. 마치 ‘우리’가 남북한 모두라는 듯이 말이다. 이 한반도 지도그림 안에는 영어로 Tour라 쓰여 있다. 이 버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부산에서 이북까지 ‘우리 땅’ 투어를 하는 대신, 작가의 우리 땅 여행은 오히려 전쟁을 직접 치르지 않은 부산 안에 떠돌며 전쟁/평화를 호출해보는 상당히 정신적이고도 역설적인 여행이다.
부산을 여행하지만, 또 한편으론 전쟁의 기억 속으로 여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정신적이고 몽환적인 여행이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부산 사진들 안에 상당히 많은 문학적 비유들과 이미지의 연쇄적인 대화가 있으며, 때로 꿈꾸는 듯이 부산을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광버스 사진의 경우, 기울어진 각도와 거대한 구름이 사진을 꿈처럼 보이게 만든다. 사진집 안에서, 첫 번째 여행지인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이란 곳을 보자. 사진의 깊은 심도와 분할 구도 때문에 그림 속의 나무는 도시를 가볍게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나무는 이 도시가 꾸는 꿈처럼 느껴진다(27). 비슷한 구도의 또 다른 사진은 부산의 다른 지역으로 보인다. 한 그루의 나무를 둘러싼 원형 벤치에 한 노인이 누워 쉬고 있다. 나무는 노인의 몸과 풍경을 절단하고 있다. 이 나무 역시 도시의 건조환경과 분리되어 다른 세계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이 나무의 생김생김 역시 꿈처럼 비현실적이다(77). 무엇보다도 작가가 이 사진집의 마지막에 배치한 사진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신으로 이끌어준다. 마치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듯이, 전경에 배치된 나무는 마치 애니메이션의 의인화된 캐릭터 같다(151).
전쟁의 기억을 다시 현재의 시간대로 가져오는 여행의 몽환성은, 그렇다고 부산을 픽션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두 개의 트랙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부산의 시간과, 전쟁을 생각하는 작가의 시간이 나란히, 같은 시간의 진행 속에 평행해 있다. 한국전쟁으로의 시간여행과 부산의 공간여행이 동시에 진행된다. 그래서 전쟁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진들은 때로 명확하게, 때로 기묘하게 전쟁을 연상시킨다. 그 결과 사진들은 ‘여기에 전쟁이 있다’라고 말하는 답변의 방식이 아니라, ‘여기엔 전쟁이 없을까?’라는 질문의 형식을 취한다.
뜨내기의 시간
다시 첫 번째 부산역 사진으로 돌아와 보자.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공상과학영화의 세트처럼 지어진 부산역으로 향해 가고 있다(25). 이 사진은 한편으로 여행담이라는 사진연작의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올 사진 속 인물들의 성격도 암시한다. 이 사람들이 실제 부산시민이든 뜨내기든 여기 여행가방을 끌고 가는, 바쁜 뒷모습이 찍혀진 인물들은 어쨌든 지금 여기서는 어디론가 떠나는, 이동 중의 인물들이다. 이 주제는 1번 챕터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고, 5번 챕터에 집중적으로 모아져 있다. 사진을 감상하거나 독해할 때 관객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부산이 전쟁과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는 이 사진들을 통해 여행과 피난 또한 연결시키게 된다.
전쟁과 부산이 연결되는 하나의 명백한 주제는 피난, 피난민이다. 소설가 최인훈은 어떤 글에서, (한국) 사회가 사회가 아니고 피난민 수용소 같다고 썼다. 최인훈에게 피난민 정서는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쇳말이다. 피난민 정서는 단지 전쟁 피난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뿌리를 잃어버린 고향 상실의 정서일 것이고, 일구고 가꾸고 보살펴야 할 장소의 부재를 뜻할 것이다. 이렇게 피난민의 정체성을 농촌을 떠나온 노동자, 고향을 떠난 유학생, 잦은 이사를 해야 하는 도시민 등으로 확대할 때, 우리는 피난민의 비유를 ‘뜨내기’라는 말로 적시할 수 있을 것이다. ‘뜨내기’라는 흥미로운 한국어는 단순히 보행자나 여행객과는 범주도 어감도 다르다. 뜨내기는 여행객과는 조금 다르다. 뜨내기는 그냥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 뜨내기는 ‘뿌리 없음’의 의미가 더 강하며, 보행자나 여행객보다 더 세게 중력에, 또 ‘고향’에 저항한다. 시인 정현종은 이런 뜨내기의 마음을 ‘눈뜨면 타향, 눈감으면 고향’이라고도 했다.
이 즈음에 몇 장의 사진들을 보자. KANGNAM EXPRESS 앞을 지나는 이 여자는 사진 속에 거의 영구적으로 머물지만, 내내 불확실한 보행자에 머문다. 사실 이 인물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관광버스 위에 실려 가는 듯이 보이는 이순신 상이다. 내겐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뜨내기 포졸로 보인다(28). 항구가 보이는 우암동의 예수상은 어떤가? 태극기와 크레인 사이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조차 여기서는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서 흘러들어온 뜨내기로 보인다(30). 해변의 커플(31), 헬멧을 쓰고 낚시하는 사람(55), 배위에서 ‘셀카’를 찍는 모녀(61), 코카콜라를 들고 분수대를 바라보는 남자(69) 등등은 모두 여기 잠시 머물다, 또 저기 잠시 머무는 사람들로서 배회하는 사진가에게 붙잡힌다. 이렇게 부산은 강용석에게 뭔가 우연적인 계기들이 부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뜨내기의 도시, ‘뿌리 없음’(Groundlessness)의 장소로 보인다.
‘뿌리 없음’의 가장 놀라운 표현은 묘지와 집을 찍은 부산 남구의 문현동 사진들이다. 문현동의 기이한 풍경은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라서 빈민이 터를 잡은 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문현동을 검색하면, 벽화가 많아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나온다. 대부분 카메라를 들고 갈 것이고, 실제로 그들이 블로그에 올린, ‘달동네’를 예쁘게 찍은 사진들이 많이 검색된다. 이런 사진들 속에는 으레 놀고 있는 아이들, 활짝 웃는 주민들이 있다. 가난이 관광의 대상이 된지도 꽤 되었으니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강용석의 ‘뜨내기’는 이런 관광의 뜨내기와 대척점에 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공간을 엄연히 분리하는 것은 인류의 지혜에 속하는 것이지만, 가난은 그런 최소한의 도시윤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뜨내기는 이 두 장의 사진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 여기에는 그 이상의 극단적인 폭력이 있다. 우리가 전쟁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면, 이렇게 묘지와 주거공간이 기이하게 중첩된 장소야말로 그곳에 핵심적인 비유가 녹아있다. 거주윤리,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가장 기초적인 주거문화의 붕괴가 그것이다. 최인훈의 ‘피난민 수용소’란 한국사회의 비유는, 사회가 사회로서 가져야 마땅할 기초적인 윤리가 무너져있는 상태, 각자의 생존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각박한 생존투쟁의 상태를 의미한다. 벽화를 그려대고, 사진을 찍어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곳에도 다정다감한 삶이 있다고 아무리 주장한다 해도, 또 그것이 조금은 사실이라고 해도 이 장소는 피난민 수용소라는 최인훈의 비유가 이미 실제가 된 장소이다. ‘뜨내기’의 도시공학적 해석이 존재한다면, 희박한 정주개념과 망가진 주거윤리를 가장 먼저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장의 사진은 피난민 도시로서의 부산, 나아가 피난민 사회로서의 한국의 도시들을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뿌리 없는’ 보다는 ‘뿌리 뽑힌’이라고 표현해야 적절하다.
착종된 시간
강용석이 시간여행을 위해 쓴 하나의 핵심적인 수단은 35미리 흑백 필름만을 썼다는 점이다